[찢어진 바다, 반민과 항왜]/출정2

검푸른 바다, 현해탄

구로시오 2013. 9. 8. 14:04

                                  출정  2

  “주군, 병사들이 승선을 마쳤습니다.”

  조선으로 향하도록 하라. 격군들은 노를 저어 항구를 빠져 나가도록 하라!  

   먼저 장창을 든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배에 올라탔고, 그 뒤를 이어 말과 식량 등 병참들이 배에 실렸다. 측근인 승려 겐소와 함께 지휘선에 올라탄 도주 요시토시는 병참까지 모두 배에 실렸다는 보고를 받고는 출선명령을 내렸다. 요시토시는 유키나가의 명을 받아 몇번인가 직접 조선에 다녀온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조선으로 향하는 뱃길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처억, 처억.”

  노들이 일제히 들려졌다가 바다에 떨어졌다.

   “읏쌰, 읏쌰.”

  격군들의 기합소리가 울려퍼졌다. 격군들이 노를 들어 젓기 시작하자, 바닷물이 튀어오르며 병선들은 미끄러져 나갔다. 도주의 명령에 따라 대마도군 오천을 나누어 실은 배들이 차례차례 오우라항을 빠져 먼바다로 나갔다. 요시토시가 탄 지휘선이 가장 앞에 섰고, 병사들과 병참을 실은 배가 그 뒤를 따랐다.

  바다는 양쪽으로 갈라지며 부채꼴의 물결로 파랑을 만들어냈다.

조선의 연호로는 임진년, 일본의 연호로는 분로쿠(文祿)1, 음력 사월 십삼일(양력 523)새벽이었다. 대마도대가 항을 빠져나갈 무렵에는 동쪽 멀리서 여명이 희뿌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서둘러라. 선두에 선 츠시마대를 따라 붙어야한다.

  무장을 한 대규모의 왜병들이 좁은 부두에서 각각의 병선에 승선을 하느라 부산했고, 승선을 마친 병선은 부리나케 대마도대를 따라 앞바다로 향했다.  규슈 북쪽과 서쪽 섬에서 징집돼 온 제 1번대 소속 병사들이었다. 그 수가 일만 팔천에 달했다.

이들이 고향을 떠나 대마도로 들어온 것은 한달 전이었다. 곧 바로 조선으로 건너갈 줄 알고 들어왔는데, 대마도 작은 섬에서 발이 묶여 한달 이상을 머물러왔던 것이다.

“조선엔 도대체 언제 가는거야?

   “섬이 좁아 터져, 옴짝달싹을 할 수 없으니, 대체 지루하고 심심해서 견딜 수가 있나.

  섬은 그대로 창살없는 감옥이었다.

   "명일 출정한다네."

   "그래, 그게 정말인가? "

   "와아,정말 잘됐네."

  한달여를 섬에 갇혀 답답하게 지내오던 병사들은 출정 명령이 떨어지자 환호를 질렀다. 병사들 모두 마음 한구석, 싸움에 대한 공포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진 않았으나, 일단, 이 좁고 척박한 땅을 벗어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무조건 기뻤다. 무작정 기다리는 지루함에서 벗어난 다는 마음에 다들 신들이 났는지, 왁자지껄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었다.

“이젠 조선으로 가는 게 맞겠지.!

“누가 장담할 수 있나. 가봐야 알겠지?

“의심도 많네, 그럼 이 배가 어디로 갈 것같나?

“낸들 아나. “

 “그런데, 자넨 왜 그렇게 조선에 못가 안달인가?

“그게 아니고, 지겨워서 그렇지.” 

삐걱, 삐걱.”

병사들이 줄을 지어, 옆쪽으로 걸쳐져 있는 널판지를 밟고 병선에 올라 타자, 그들이 내딛는 걸음에 항만과 사이를 연결해 놓은 널판지는 삐걱하고 신음 소리를 내었다.

  그래도 싸움보다는 지겨운게 나아! 싸움이 시작되면 언제 어떻게 될지 .

그래, 맞아. 싸움이 벌어지면 목이 꺼랄 수가 없지!

재수없는 소리하고 있네. 한번 죽지, 두번 죽나. 죽을 죽더라도 이런 좁은 섬에 갇혀 세월을 보내는 것보단 싸움이 나아! 죽지않고 살아나 잘만하면 챙길수도 있고.

살아있구나서, 한몫이 필요하지 죽으면 소용있나!”

“'죽은 정승보다 거지가 낫다 말도 모르나. 몸들 조심하라구!

제길, 누군 싸움이 좋아 이러는 줄 아나.”

그러니까, 한몫 챙긴다고 괜한 욕심 부리지마.”

나도 이 배가 이대로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더 바랄게 없네.”

글쎄,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근데 츠시마대가 무장을 하고 앞장 선 걸 보면, 이건 싸움을 위해 조선으로 건너가는 것 맞네.”

“그나저나, 이제 곧 농번기도 시작될텐데, 농사는 누가 짓나

그러니까 대신 한몫을 챙겨야 된다는 게, 내말이야.”

 

병사들은 웅성웅성대며, 어둠을 밝히는 횃불에 의지해,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널판지를 건너 병선으로 올랐다.

고니시 유키나가를 대장으로는 하는 조선정벌군 1번대 소속 일만팔천의 대군이었다.

오우라항은 원래 천연항으로, 대마도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조그만 어항이었다. 바다 가운데 섬이 양쪽으로 불쑥 솟아 올라 바다를 막았고, 섬의 능선을 따라 물이 굽어져 생긴 천연항이었다. 그곳은 평시에는 도주의 허락을 받은 어선만이 출입할 수 있 곳이었다. 천연항이라 좁았고, 배를 붙힐만한 시설도 변변치 못했다.

승선이 끝났으면 배를 좀 빼어!”

앞에 배가 그대로 있는데 어디로 빼란 말인가?”

좁은 선착장안으로 크고 작은 칠백여척의 병선이 서로 들고 나니, 섬 전체가 난리가 난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우라항에 이렇게 많은 배가 들어 것은 유사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병사들을 실은 배가 부리나케 선착장을 빠져 나가면, 그 빈자리로 다음 배가 들어왔다. 배마다 무장한 병사들이 가득가득 올라탔다. 병사들이 움직일 때마다 선체는 흔들거렸고, 무게에 바다도 함께 출렁거렸다. 칠백여척의 병선은 정박장만으로 부족해 연안 앞까지 뻗어 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고요하던 오우라항의 새벽바다는 칠백여척의 병선이 뒤엉켜 어수선했다.

 후속 부대를 실은 배들이 바다로 나와 합류할 때까지 기다려라!

선발로 오우라항을 빠져나온 요시토시는 부산진쪽으로 뱃머리를 돌려놓고는 해도를 펼쳐들었다. 대마도군을 실은 병선은 시커먼 현해탄의 물살을 좌우로 가르며 천천히 미끄러지고 있었다. 노는 걷어올려졌다.

아침 해는 동쪽에서 조심스럽게 그 붉은 정수리를 내밀더니, 어느새 수평선위로 몸통을 둥그렇게 나타내며 치솟아 올랐다. 바다위로 올라선 태양은 하늘로 뿜어대던 붉은 빛을 떨쳐버리고, 그 대신 하얀 햇살로 시커멓던 바다 전체를 훤하게 밝혀주었다. 희뿌옇게 깔려있던 바다 안개는 어느덧 사라졌다.

주군, 병선들이 바다로 나오고 있습니다.

 , 수고했다! 그런데 유키나가님의 배는 어디쯤 오고 있느냐?

요시토시는 현해탄의 해도와 조선의 지도가 그려져 있는 화지를 얼른 접고 선실을 나와 배의 후미쪽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좌우에 부장들이 따라 붙었다. 그는 이마에 손을 대고는 두눈을 크게 오우라 항쪽을 멀리 살폈다. 

“총대장님의 배가 빠져 나왔는지 살펴보아.

시야로 병선들이 속속 항을 빠져나오는 모습이 들어왔다. 각대의 병사들을 태운 병선은 커다란 아타케선(安宅船-대형 병선)중심에 섰고, 좌우에 속도가 빠른 세키선 (關船-중형 병선) 고하야선(小早-소형 병선) 바싹 붙어 일단의 선단을 이루어 움직이고 있었다. 대형 아타케선에는 수장이 타고 있었는데, 좌우로 전투원들이 세키선과 고하야선이 붙어 호위를 했다.

요시토시는 바닷 바람을 받아 위에서 펄럭이는 깃발들을 유심히 보았다. 바다를 살피는 그의 왼쪽 뺨으로 햇빛이 하얗게 반사되었다. 준수한 청년의 모습이었다. 오른쪽으로는 허리에 칼을 차고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커다랗고 시커먼 그림자가 햇빛을 받아 길게 늘어져 있었다.

돛을 올리고, 깃발을 높이 세워라. "

 

난간 곳곳에 깃발이 꽃혔다. 깃발에는 검은색 사각형에 흰색 원이 박힌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대마도주의 문양이었다. 난간에 꽃혀진 깃발은 바 닷바람을 받아 힘차게 펄럭였다.

"격군들은 기운을 아껴 쉬도록 하라.

깃발을 꽃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각을 실은 커다란 배가 요시토시의 병선 쪽으로 파도를 가르며 다가왔다.

   “유키나가님의 아타케선입니다.

다가오는 병선에는 이미 깃발이 꽃혀 펄럭이고 있었다. 깃발에는 하얀 십자가의 문양이 선명하게 박혀있었다. 대장선이 틀림없었다. 유키나가는 자신이 천주교도임을 나타내기 위해 문양에 십자가를 그려 넣고있었다. 소위 말하는 크리스쳔 영주였다. 배는 대장선답게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갑판 한가운데 3 누각이 자리잡고 있었고, 누각 꼭대기에서 갑판 아래쪽으로 길게 줄이  드리워져, 깃발이 달려있었는데, 깃발마다 십자가 문양이 선명하게 박혀있었다. 십자가가 그려진 형형색색의 비단 조각이 해풍을 받아 너풀거렸다.

뿌우웅

멀리서 조개 나팔 소리가 들려왔. 전군이 승선을 마치고 항을 빠져 나왔다는 신호였다. 이윽고 옆으로 다가왔던 대장선에서 신호수가 깃발을 좌우로 세번씩 흔들었다.

'대마도대는 선두에 서라.' 수신호였다.

“자, 앞으로 치고 나가라.

요시토시가 배가 앞으로 빠져나가자 유키나가의 대장선이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이를 필두로 700여척의 병선이 부채꼴 대형을 이루며 뒤를 이었. 현해탄의 바닷물은좌악하고 좌우로 갈라져 나갔다.

선단의 목적지는 조선의 부산포였다. 사납기로 유명한 현해탄의 물결도 늘만은 잔잔했다. 시계도 나쁘지 않았다. 온갖 깃발로 장식한 병선들은 웅장한 기세로 물살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마치 힘센 맹수가 털을 세우고 이빨을 들어내며 먹이를 노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위용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섬뜻할 정도로 공포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대규모의 병사를 실은 선단이 바다를 짓누르자 바다는 무게가 버거운   파도를 일으켰다. 바다의 신음이었다. 그럼에도 일만 팔천의 왜병을 실은 칠백 여척의 크고 작은 병선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현해탄의 시커먼 물살을 가르며 도도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병선에 짓눌려 깨어져가는 포말에 아침 햇살이 비췄다가는 함께 스러져갔다. 검푸른 바다 현해탄은 마치 앞으로 벌어질 비극과, 상처의 깊이를 아는 저항의 몸무림을 치며 출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