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바다, 반민과 항왜]/반민1,2,3

반민

구로시오 2013. 9. 17. 13:23

 

 

 

 

 반 민

                                                                        1

 살동은 전복잡이였다. 당시 조선에서는 전복잡이나 해물을 따는 사내들을 자로 포작 (鮑作)이라 썼다. 진서(眞書) 모르는 상민들은 포작의 한자의 의미는 접어둔채, 한자 발음뒤에 사람을 지칭하는 이를 붙여 보자기라 지칭 하였는데, 표현에는 매우 것들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있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는 모르지만, 보자기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천대와 멸시의 대상으로 각인돼 있었다.

보자기들은 말이어. 막장인생 사는거이랑께.

그러지. 쩌놈들은 말이다. 먹을 떨어지면 짓을 할줄 모르는 개망나니들이랑께. 상종을 안한 것이 상책이랑께.

일중에서도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 포작 일이었다. 당시 생활이 아주 곤궁한 자들이 먹고 살기위해 없이 선택하는 비천한 직업이 백정이었는데, 그들보다도못한 취급을 받는 것이 포작이었다. 백정이야 짐승을 도륙하고 피를 보는 일이니, 당연히 하는 일이 잔인하다해서 천대를 받았지만, 포작들은 목숨걸고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임금과 양반들이 즐겨찾는 맛좋고 좋은 복을 잡아 바쳤는데도, 천대를 받았. 그렇다고 벌이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천대는 천대대로 받고, 목숨을 걸어도 댓가는 별거 없는 아주 힘들고 고통스러운 직업이었으며, 이른바 천예와 다름없는 신세였다.

   네미 붙을 놈의 세상.”

  포작들은 이렇게 세상을 원망했다. 해안가에서 빈민으로 태어나 가진게 없 는 이들은 갈고리 하나만으로 생활을 영위해야했다.

하늘에 해가 보이는 날이면포작들은 벌겋게 녹이 잔뜩 슬은 쇠갈고리 하나를 들고, 매일 바닷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암초에 납짝 붙어있는 전복이나 해삼 등의 해물을 따내는 그들의 눈동자는 항상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염기가 많은 짜디짠 바닷속에서 혈안이 되어 맨눈으로 해물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워메 자네 눈이 썩은 동태눈깔이 되었뿌렀네,.”

아따, 사돈 남말하고 자빠졌구마. 내눈이 썩은 동태면 자네 눈깔은 소곰에 쩌려진 밴댕이 눈깔이여.”

포작인(鮑作人)들은 직업상 주로 남해안과 제주에 많이 거주했다. 그쪽에 섬이나 암초가 많기 때문이었다. 또한 해녀들이 주로 연안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데 비해, 포작들은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는 일이 많았다. 씨알이 전복을 잡아 좋은 값을 받기 위해서는 연안에 서식하는 것들보다 수심이 깊은 바다에서식하는 굵직한 것을 노려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위험은 하지만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먼바다의 무인도나 암초를 찾아나갔다. 어쩌다가 운이 좋아, 해산물이 잔뜩 붙어있는 암초를 찾는 날에는 횡재한 것처럼 기뻐했다. 그러나 그런 날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가뭄에 콩나듯 했다는 말이 알맞았다. 

 워메 오늘은 해삼하고 멍게뿐이 없구만!

 이게, 뭔일이랑가? 여긴 다음 잡을려고 지난번에 역부러 손도 안대고 놔둔 곳인디. 웜메. 전복은 커녕 전복새끼, 아니 손자도 안보였부네.

 우리말고 놈들이 와서 훑어버린 틀림없당게. 어째사쓰까, 쩌번에 , 딸라다가 쪼깨 키워 따자는 말에 놔뚜고 갔뜨만은, 엄한 놈이 와서 쌔베부렸구마잉.

 웜메, 지미 씨벌, 한나절이나 걸려 여까지 왔는디, 참말로 성질 나부네.

 어뜬놈들이 그래쓰까잉? 참말로 썩어 뭉댈새끼들이구마잉.

 아따, 바다 괴기가 따로 임자가 있당가? 먼저 먹는 놈이 임자제.

 웜메, 공자,맹자, 군자 나버렀네! 옘병 동무란 놈이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고, 터져 죽겄는디, 거그다 염장 즐르는구먼. "

 "그려, 암만 임자가 없다해도 구역이랑게 있는게지. 참으로 똥물에 튀켜 죽일 놈들이구먼.

 "아따, 긍께, 보자기 소리를 들으며 땅사람들에게 손꾸락질 받는 아니랑가.”

 "엥이, 씨부럴놈들. 전복파다가 손꾸락이나 뿌라쳐 부러라."

마른 전복은 임금의 수라상에 오를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커다란 전복을 따, 바람에 잘 말려 어물전에 가져가면 그런대로 높은 값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고로 자연스레 포작사이에서도 새끼 전복은 '키워서 딴다.'는 암묵의 약속이 있었던 것이었다.

"새끼 전복은 되도록이면 채취하지말고 크도록 내버려둬야 씨가 마르질 않는거여.새끼에 눈이 멀었다간 같이 죽는거여."

그런데 자신 밖에 모르는 속알머리 좁은 포작들은 새끼고 뭐고 닥치는대로 해산물을 훑어갔다. 그런 통에 불문율의 바다의 질서가 무너지곤 했다.

사정이 이러니, 이들은 다른 포작들의 손때가 안탄 암초를 찾아, 자꾸 멀리 나가야만 했다.

 

"워메,배가 쬐끄매 먼바다는 허벌라게 위험해뿌러."

"그려,파도가 쬐끔만 쳐뿌려도 쩌딴 배는 그냥 뒤집어 뻐린당께."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어쩐당가?”

긍께 말이여.”

 달리 방도가 없는 포작들은 오직 먹고살기 위해 왜돛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갔다. 그러다가 풍랑을 만나 불귀의 객이 포작들이 많았다.

포작들에게 바다는 잔잔할 때야, 어머니의 양수같이 포근했지만, 조금이라도 하늘이 꾸물락거리고, 바람이 걷잡을 없이 표변하는 폭군이었다.

포작들도 자신들의 생활터전인 바다가 손바닥 뒤집듯 변덕이 심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때만되면 용왕님의 비위를 맞추려고 재물을 바치고 만신을 불러 굿판을 벌였다. 그들의 정성이 부족했는지, 바다의 욕심이 컸는지, 아무튼 바다는 자주 으르렁대며 화를 냈고, 그때마다 많은 포작들이 맥없이 파도에 휩쓸려 사라졌다.

워메, 뭔놈의 바다가 저리도 변덕이 심한가 모르겠구먼.”

그려. 변덕이 영낙없이 팥죽 끓듯 했버려쌌니, .암튼 조심하더라고

바다의 변덕스러움을 잘아는들은 물질을 하다가도, 구름의 움직임이 조금만 이상하거나, 바람이 불어 파랑이 일기 시작하면, 잽싸게 가까운 섬이나 육지로 배를 몰아 몸을 피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사이에 바다가 잠잠해지면 다행이지만, 바다는 어떨 사나흘 이상을 요동을 치며 심술을 부리는 때도 잦았다

그럴 때마다 포작들은 섬에서 오도가도 못하거나 육지에서 발이 묶여 버렸다. 옴짝달싹 못하는 그들은 떨어져 가는 식자루와 하늘만을쳐다 보하릴없이 버텨야했다. 그러나 하루살이같은 생활을 하던 그들에게 여유가 있을리 만무였고, 지니고 있던 식량은 곧 바닥을 드러냈으니, 뭍에서 꼼짝달싹 못하는 그들은 배를 일이 많았다.

 사흘 굶어 남의 담장을 안 넘는 군자없다.

 

   속담처럼, 식량이 떨어진 이들은 가끔 도둑이나 강도로 변했다.

처음에는 배가 고파 단순히 식량을 노렸지만, 견물생심이라고 좋고 값나가는 물건을 보면 훔첬다. 하물며 아녀자를 보면, 납치해다가 겁탈하는 짓도 마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섬이나, 해안가 사람들은 이들 포작인들을 해귀(海鬼)라고 했다. 평소에는 경멸의 대상이었지만, 약탈이 시작되면 이들은 공포와 경계의 대상이었다.

남해안의 포작들의 해악이 심해 백성들이 폐해가 막심하옵니다.”

조정에서도 이들의 해악이 심하다는 상소가 그치질 않았다.

  고을의 수장에게 명령하여 포작들은 관의 등록을 하도록 하라. 그리고, 그들이 들고 나는 것과 움직임을 철저히 파악하여 관리하도록 하라.”

남해안 도서지방을 관리하는 수장들에게 별도의 명을 내릴 정도로 조정에서도 포작들의 패악에 골치를 앓았다.

특히 일년중 태풍이 잦은 늦여름에서 가을에 이들의 약탈 행위가 기승을 부렸다. 가뜩이나 미운 털이 박혀있는 포작들은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함께 싸 잡혀 냉대를 받았다

 보자기놈들과는 일체 상관 안하는 것이 상수여.”

그려, 똥이 무서워 피하는 감, 더러워서 피하제. 하여간 그놈들은 근본을 모르는 작자들잉께, 상대를 안하는 게 좋은 일이구먼.”

 

 보자기라는 명칭 자체가 조롱과 경멸, 그리고 경계의 대상이었으니, 포작 일을 하는 총각에게는 나이가 차도 시집올 처녀가 없었다. 혼기가 꽉찬 딸을 두고 있는 포작도 같은 포작에게는 딸을 주지 않으려 했으니, 천대와 괄시 보통 심한 것이 아니었다. 막말로 ,돼지와 하등 다를  없는 존재였다

                               2

살동이 태어난 곳은 진도 근처 작은 어촌마을이었다. 물가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으례 그렇듯이 살동 역시 어려서부터 물질을 배웠다. 싫든 좋든다가 생활터전이었던 그들은 걸음마질을 배우면서 동시에 바다에 뛰어들어 물갈퀴질을 배워야만했다.생존 법칙이었다.

살동의 부모는 원래는 내륙에서 소작을 하던 농민이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조선사회에서 농민은 나라를 지탱하는 중심이었다. 그러기에 소작을 하더라도 농민은 양민대접을 받아 신분적 멸시없었다그러나 자신의 농토 한점없이 찢어지게 가난한 소작인들은 악독한 지주밑에 있다가, 흉년을 만나면, 먹을 게 없어 남의 집으로 문전걸식을 다니다. 그대로 천민으로 떨어지는 일이 많았다살동의 부모도 흉년에 소작을 잃고 전전하다가결국 바다까지 밀려왔다

땅은 주인이 있었지만, 바다는 주인이 없었다. 먹고 살기위해서는 땅 대신 바다를 택할 수밖에 없었고그러다가 보자기 소리를 듣게 것이었다.

살동이  열살이 안 될 무렵의 일이었다그의 친부는 남쪽 해안으로 전복잡이를 떠났다가, 배와 함께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같이 배를 타고 나갔 사람들이 모두 불귀의 객이 되었다.

그의 친부가 실종된 이듬해부터 원래부터 몸이 약한 친모는 원인 모를 으로 시름시름 앓았다. 생활이 워낙 궁핍해, 의원은 커녕 한첩 제대로 써보 못했다살동은 한약 한첩이라도 써보는 것이 소원이었으나 소원 이루어지질 않았다결국 이듬해 동이 열한살 되던 해에, 입에서 피를 바가지나 쏟고 눈을 감았다.

워메, 어린 새끼 하나만 나뚸불고, 어찌 눈이 감겼단 말이냐. 워메, 어린 쩌것만 짠하게 됐구마.

그랑께 말이여. 어째사 쓰까?

조실 부모한 살동을 마을사람들은 측은하게 여겨, 장례도 도와주고 먹을 것도 챙겨주곤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워메, 와부렀냐? 어째사 쓰까? 우리 묵고 죽을 것도 없응께, 인제 오지 말아라잉!

아따, 마을에 혹덩이가 생겼구마.

천애고아가 되어버린 살동을 마을 사람들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했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을 알고, 그는 동냥질을 그만 두었다. 그리고  바다를 뒤졌다. 바닷가 근처에서 자랐기에 익숙한 바다였지만, 해산물을 채취해 생활을 꾸려나가 일은 어린 살동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언제나 발가벗고 바다에 들어가 코를 손으로 막고 숨을 잠시 멈춘 후 머리를 거꾸로 쳐박았다. 그리고는 밑바닥을 향해 쉴 새 없이 자맥질을 했다. 처음에는 허파가 다음에는 가슴 전체가 바닷물에 눌리는 듯 했다. 바다속은 공포가 되어 엄습해왔다. 그래도 숨이 넘어가기 직전까지 바닷속을 훑었다. 바다가 허파를 억죄고 가슴이 답답해 왔지만 살동은고통과 두려움을 참아냈다. 남들보다 오래 그리고  깊은 바다 밑까지 잠수를 해야만 남보다 많은 해산물을 채취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푸우후,콜록, 콜록.

 살동은 바다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언제나 입과 코로 들어간 물을 내뱉어 내느라 기침을 해댔다. 염기가 많은 바닷물은 엄청 짰다. 숨이 너무도 가빠, 참지 못하고 숨을 들이키다가, 어긋나바닷물은 인정사정 없이 코와 입을 파고 들어왔다. 날소금보다 몇배나 바닷물은 입안을 얼얼하게 했다. 그럴 때마다 죽을  같은 고통을 느꼈다. 그런 날은 하루종일 물을 켜야만 했다.

   어린 살동은 바닷물 삼키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열세살 무렵까지 굶어 죽지 않고 그렇게 버텨왔다. 또래 아이들과 해안가 바위 근처에서 빨개를 홀딱 벗고벌거숭이가 되어 물질을 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동무들이 있어 재미도 없진 않았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잠지에 검고 보송보송한 것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벌거벗고 물질을 하는 것이 창피했다.그래서 또래들과 바위 근처 얕은 바다에서 하던 물질을 그만 두고 어른들을 따라 배를 탔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른 포작들을 따라 위험하기 그지없는 먼바다까지 나갔다. 그렇게 고아인 살동은 남들보다 너댓살 빠른 나이부터 본격적인 포작노릇을 하게 것이다.

 살동은 영특하고 눈치가 빨랐다. 성격상 남에게 지는 것도 싫어했다. 바다에 들어가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들보다 오래 바닷속에 머물렀다. 독하게 버텼다.

 "나이도 어린 것이 독하구만."

 "긍게 말일쎄. 애송이가 어른 버금가 부르네, 그려."

 아가야, 쉬엄쉬엄 해라. 그러다 허파에 쐬금물 들어가야.”

 그려, 허파에 짠 쐬금물 들어가믄 약도 없서부러. 그대로 퉁퉁 부어 죽는거여.”

  , 알았으라우.”

어른 포작들을 쫒아다닌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포작들 중에서, 내노라하는 자들 살동에게는 혀를 내둘렀다. 그들은 나이는 어리지만, 살동이 독한 놈이라 빈정거리면서도 그를 꾼으로 인정해 동급으로 대해주었다.

그는 머리가 영민하여 세상 돌아가는 일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천민인지라 한자를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 진서를 배우지는 못했지만, 언문을 혼자 힘으로 깨쳤다. 그는 무엇이든지 귀로 들은 내용을 언문으로 쓰고 읽는 것을 좋아했다.

청년이 되어서는 살동은 어른들 보다는 또래 동무들과 함께 배를 타고 주로 남쪽 해안을 많이 뒤졌다. 진도와 흥양( 고흥)일대 지역을 았았기 때문 이었다. 어려서부터 배를 타와 경험이 풍부한 살동을 또래 동무들은 우두머리처럼 여기고 그를 따랐다.

남쪽 해안은 다도해라, 섬도 많았지만 암초도 많았다. 그래서 그만큼 위험했다. 그러나 파도가 심하고 암초가 많은 지역에 실한 전복이 많이 서식했기에 이를 잘아는 살동은 남들이 꺼리는 먼바다까지 나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오늘은 쩌 아래 쪽 바다로 쬐깐 멀리 가서 훑어보자고요 !

 그라끄나, 날씨도 쾌청하고 조은께 오늘은 멀리 나가보까이?

고흥 앞바다 거금도에 머물고 있던 살동과 일행은 아침 일찍 일어나 조식을하고 있었다. 그들의 왼편에서 떠오르는 유월의 해가 볼을 따갑게 비춰왔다. 바다는 맑은 해를 그대로 반사해 파랗고 청명한 구슬을 비춰내고 있었다.

살동과 일행은 모래사장에 올려져 있는 배를 앞에 두고 둥그렇게 둘러앉아 조식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 앞에는 보리밥을 그득 담아 놓은 광주리와 작은 생선들을 올려놓은 대나무 소쿠리가 몇개 놓여있었다. 먹을 것이라 봤자 보리와 생선말린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여느 진수성찬 부럽지 않다는 듯이 보리밥을 나무 숫가락으로 , 입속에 넣은 , 생선 말린 것을 집어 입으로 주욱주욱 찢어가며 씹고있었다.

 그래 보끄나, 탐라 근처 추자도에 작은 섬들이 많응께 그쪽에 있는 전복을 뒤지먼 좋겠구만..

살동이 밥을 다먹었는지 그릇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일어서며, 중얼거리듯 했다.

아따, 거긴 너무 먼데..,배가 째깐해서 너무 멀리 나가먼 위험 하꺼신디..

 

나이가 들어보이는 손가가 햇볕이 반사되어 하얗게 비치는 살동의 옆 얼굴을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말을 건넸. 그러자 살동이 그 말을 줏어받듯이 대꾸했다.

 아따, 하늘이 쩌릇케 푸란디 걱정이라요.! 그라고 날씨가 싸나져 불먼 탐라가 가깡께, 그리로 피하면 되지 그라고  걱정한다요…”

 “그래붑시다. 아제. 기왕 나가는 멀리 나가 실한 놈들, 많이 잡어붑시.

 

살동의 또래뻘인 만석이 말린 생선을 씹으며 거들었다.

워메, 나도 그라고 싶은 맴이야 굴뚝같제, 근디 유월이라 날씨가 변덕이 심항께, 쬐깐 걱정은 되는구먼!

아따 걱정은 붙들어 매소. 파도가 높아질라고 하믄 언능 가차운 땅으로 올라가 불먼 아니겄소!

암튼 걱정은 되는구만. 갈데 가드라도, 좌우간 하늘을 보라고, 사고를 만날라먼 구름이 어뜨게 움직잉가 살펴야 한당께.

저마디 한마디씩 하던 공론은 그렇게 결론이 났다. 전복잡이 열한명을 태운 배는 서남쪽 바다를 향해 나갔다. 배는 기장이 어른 두개 정도였고, 폭은 어른 걸음으로 두폭 될까 말까한 작은 돛단 배였다. 뒤쪽에는 커다란 노가 고정되어 있었다. 배가 바람을 받아 한참을 달리고 , 커다란 섬이 눈앞에 나타났. 옆으로는 작은 섬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살동의 눈에는 틀림 없이 섬은 추자도였고, 작은 섬들은 암초인 무인도로 보였다.

워메, 섬들이 아주 촘촘히 떠있구먼!

, 오늘 솜씨를 발휘해 볼꾸나!

 

살동이 흥이 났는지 직접 돛을 내리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그나저나 배를 어느쪽에 대나?

 저쪽 짝은 섬들이 많은 쪽으로 가자고. 거그다 배를 띄워놓고는, 글고 바위를 훑자고.

손가가 추자도와는 조금 옆쪽으로 둥실 떠있는 암초들을 가리켰다.

 “, 그럼 그리로 나갑니다요.

살동이 돛을 내리는 것을 보고 만석이 노를 저었다. 노질로 나가는 배는 끄덕끄덕 갈지자를 그리며 앞으로 나아갔. 잔잔한 파도가 뱃전을 쳐댔다. 닻을 내린 후, 손가 한사람만을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바다로 뛰어 들었다. 나이 든 손가에게 배를 지키면서 하늘을 살피는 역할이 주어진 것이었다.

  살이 포동포동한 아주 큼지막한 것들로 훑어 걷어올리라고, 잉!

살동의 전복 채취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워낙 어릴 때부터 먼바다에서 물질을 , 전복이 숨어 서식하는 곳을 알았다. 폐활량도 좋았다. 남들이 숨을 헐떡거리고 머리를 내민 , 숨을 고르고 다시 물에 들어갔다 나올 때쯤에서야 그는 물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남들보다 한배 반 정도를 물속에 머물렀다. 게다가 노련했다. 항상 남의 두배정도를 걷어 올렸다.

살동은 옆구리에 망태를 둘러차고, 손에는 갈코리만을 든채, 먹이를 견한 오리가 대가리를 쳐박고 자맥질을 하듯이 폴짝 뛰어 바다로 들어갔다. 바닷속에서 시간을 벌기위해서는 빠르게 수면 아래쪽으로 내려가야했다. 살동은 발을 갈퀴처럼 뻗어 재개 놀렸다.

실은 물질을 때마다 살동의 가슴은 떨렸다. 항상 두려운 마음이 엄습했다. 어릴적 들이켰던 바닷물의 독한 맛은 뇌리 깊은 곳에 박혀있었다. 게다가 바다속은 언제나 깊고 고요했고, 묵직했다. 넓고 무겁고 깊은 속을 지닌 바다는 언제나 자신을 포근하게 받아주었으나, 살동은 무겁고 깊은 바다가 무서웠다. 잔잔하다가도 어느 일순간에 표변을 해서는 모든 것을 집어 삼켰다. 그리고는 다시 아무일 없던 것처럼 태연했다. 바다를 잘 알기에 오히려 더욱 두려웠다. 바다는 갑작스레 표변하는 인간보다 변덕이 심했다. 바다는 따뜻하다가도 매몰차게 차갑게 변했고, 게다가 무심했다.

그래도 일단 그곳에 뛰어들면, 세상 모든 것과 차단되는 느낌이 좋았다. 속에서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않아도 됐다. 오직 자신이 노리는 전복이나 산물과 어울릴 뿐이었다. 신분이 천하다고 차별받는 일도 없었고, 양반이라고 잘 난 하는 놈도 없었다. 깊은 바닷속에선 오래 있는 놈이 최고였다. 해산물을 많이 채취하는 놈이 대접받고 떨어지는 몫도 많았다. 그만큼 행세할 있었고 인정도 받았다. 인간이 만든 세상과는 달랐다.

푸우후

푸우후

바다속으로 들어갔던 살동이와 일행들은 주기적으로 수면을 뚫고 나왔다. 개를 쳐들며 숨을 들이쉬기 위해 크게 물을 내뱉고는 헤엄을 쳐 배쪽으로 다가왔다. 망태를 뒤집어 따온 전복과 해삼들을 배위에 쏟아놓고는 다시 바다 밑으로 몸을 감추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배위에는 전복과 해산물이 수북이 쌓였다.

"워메,오늘은 수확이 실해뿌리네."

"통통하고 큰 놈이 많응께,잘 몰려 어물쩐에 폴면 양식 쫌 되겠네,잉."

"아따,그래뿌릴라고 요 멀리와 고생하는 거 아니갔소." 

전복과 해산물이 배에 쏟아져 떨어질 때마다, 손가가 좋아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살동이 일행이 스무번 이상을 바다속으로 들락달락하였을 때였다. 

 “어이, 구름의 움직임이 빨라졌당께. 이제 그만하고 뭍으로 가야하네잉!

 

배위에서 하늘을 보고 있던 손가가 일기가 걱정되었는지, 물속에서 나와 배로 다가오는 살동에게 그만 끝내자고 재촉하였다.

아제여, 쩌그 바위밑에 실하고 두툼한 전복들이 검난디, 쩌걸 냅두고 가자고우라?

아직 파도가 일지 않으니, 쪼께 잡아도 가튼디요. 아제.

 하늘이 수상찮아서 하는 말이제. 나라고 전복을 많이 잡는게 싫은 아니랑.

알았당께요, 우리도 지쳐가니 쪼깨 잡고 가부릅시다.

말을 마친 살동은 손가의 대답이 나오기 전에 머리를 들었다가 물속으로 쳐넣었다.

 “아따, 전복 딸라다가, 배가 파도에 떠내려 가불먼 어짤라고, 집을 펴싼단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손가의 투정은 바다위에 공허하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한식경도 지나지 않아, 바닷속에서 전복을 따던 살동은 바닷속 해초가 좌우로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곧이어 바닷물에 몸이 크게 밀렸다. 살동은 위험을 감지하고 부리나케 갈퀴질을 했다. 물위로 올라오니 이미 하늘빛은 검게 변했고, 파도도 크게 일고 있었다. 

싸게 싸게 올라오더라고. 서둘러 빨리 섬으로 안가믄 죽게 생겼어야.

 

손가의 재촉소리를 들으며 배에 올라타는 살동의 젖은 몸에서 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아제 말이 맞아뿌렀네요. 서둘러 돛을 올리고 뭍으로 가야겠습니다요,.

워메, 그랑께 진즉에 내말을 들었음 이런 안볼텐데, 고집을 피워쌌트니.

일행이 모두 배에 올라탔음을 확인하고 가까운 추자도를 향해 배를 몰았다. 폭풍이 몰려오려는지 바람은 점점 세져갔다. 덩치가 만석이 마음이 했던지, 뒤쪽으로 가서는 두손으로 노를 잡고 젓기 시작했다. 돛폭이 바람에 심하게 흔들렸고, 선체는 파도에 실려 일렁됐다. 일행 모두는 바람이 심상치 않다고 느끼면서도 추자도가 바투로 보였기에, 그때까지 설마하며 걱정은 안했다.

휴우웅, 휴웅.

돛이 흔들리지 않도록 돛대를 잡고 방향을 잡아야!

워메, 근디 바람이 워낙 쎼부러서 같지 않그만요.

추자도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평소 같으면 누군가 호기있게 물로 첨벙 뛰어 들어 헤엄을 칠 만한 거리였다. 아무도 그럴 엄두를 내지못했다. 그만큼 바람이 거칠었고, 파도가 높았다. 설상가상으로 하늘에서는 폭우가 내려쳤다. 사위는 금세 컴컴해졌고, 배는 높은 파도에 실려 요동을 쳤다. 깜짝할 사이였다. 배는 추자도쪽이 아닌 아랫 방향으로 빗겨 떠내려가고 있었다.

 “아따, 저쪽으로 배를 몰아야제! 어디로 몬당가!

 “워메 바람이 요동을 치니, 맘대로 안된당께요! 아제가 해보소.

 "염병,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기올라가겠네."

티격태격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성난 파도는 화가 삭혀지지 않는 듯 점점 높게 으르릉거렸다. 파도가 삼킬 듯이 다가와 뱃전을 들이칠 마다 배는 크게 흔들렸다. 위에 놓아두었던 나무통이 쓰러져 굴렀고 한나절 동안 잡아 따로 담아 놓았던 전복들도 모두 뱃바닥으로 흩어져 나갔다.

워메, 애써 잡아놓은 것이 엎어져 버렸네, 오매 우짜까?

"우메,아까워부린거."

 배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으려고, 뱃모퉁이를 잡고 있던 살동과 일행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몇인가가 아까운 마음에 해산물을 주워 담으려 요동치는 위를 무릎 걸음으로 기었다. 그러나 바닥에 떨어져 제멋대로 흩어진 해산물은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려, 마친 깨진 쪽박속에 물과 같아 주워 담기가 어려웠.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랑께. 이리와 돛대를 잡아! 이게 부러지면 죽어야.

서봉이 애를 쓰며 악을 쓰자, 몇인가가 돛대쪽으로 앉은뱅이 걸음을 하며 다가갔다. 그들이 돛대를 잡으려 하자, 배가 한쪽으로 기울며 쏠렸다.

워메 조심하라고 . 한쪽으로 모이면 배가 기울어야. 균형을 잡어야제. 균형을. 빨리 퍼져서 앙거랑께.

배는 섬과 점점 멀리 떨어져 나갔지만, 사방에서 부는 바람때문에 돛으로 방향을 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배의 수평을 유지하기위해서는 모두 가장자리에 붙어야 했다.

"돛을 내려야쓰지 않겠냐?"

모두 제자리에서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꺽일 알았던 바람은 수그러들 몰랐고, 폭풍에 실려온 굵은 빗방울들은,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는 이들의 온 몸위를 사정없이 내려쳤다. 고개조차 쳐들 없었다.

그때, 하는 소리가 들렸다.

워메, 돛대가 뿌러져 부렀어라우. 돛대가.

아따, 은자 워쩌크름 한다요. 집에도 못가고 바닷 귀신이 되게 생겼구먼.

두터운 황포가 달려있던 돛이 힘없이 부러져 나가는 그들은 모두 가슴이 철렁했다. 어떻게 손을 도리가 없었다. 뒷쪽에서 노를 잡고 있던 석도 심하게 흔들리는 때문에, 이상 서있을 수가 없었는지, 가까이로 주저앉았다. 그가 있는 일이라고는 노가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두손으로 노를 잡고 버티는 일뿐이었다. 돛대가 부러져 나가자 배는 요동이 조금 덜해졌으나, 이제는 방향을 잡을 없었고, 배를 뭍으로 향하게 수도 없었다. 그저 파도의 움직임에 운명을 맡기는 것외에 그들은 달리 길이 없었다.

이제는 어쩔 없응게, 모두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당게. 암튼 폭풍이 지나가기만 기다리자고.

살동은 배가 어디로 가든 배만 잡고 바다에만 빠지지 않으면, 길이 을거로 믿었다.

'유월의 폭풍이니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돛이 부러져 나가 동요하고 있는 사이에 배는 아래쪽으로 흘러, 어느새 자도의 모습은 사방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배는 파도에 실려, 점점 디론가로 밀려가고 있었다. 파도가 점점 높아져, 불안을 느끼고 있는데, 아니 다를까, 배가 파도에 실려 떴다가는 바다위로 내동댕이 쳐졌다.

 으악.

소리를 지르며 서너명이 바다에 빠졌다. 파도는 이들을 바로 삼켜버렸다. 금세 사방 어디에도 그들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배위에 남아있던 자들은 자신의 하나 유지하기 어려움을 잘 알았다. 다른 사람을 찾아 구출할 만한 상황이 아닌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살동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들이치는 빗발과 파도를 피하려고, 고개를 배밑창에 틀어박고 밑창에 고정되어있는 고리를 잡고 버텼다. 돛끈을 매어놓는 고리였다.

죽어도 이걸 놓치면 안된다. 놓치는 날로 끝이다.

배가 출렁일 때마다 몸이 뒤틀렸다. 그래도 쇠고리를 잡고 놓지않았다. 폭풍우는 멈출 줄 몰랐고, 바다는 폭풍우에 대항하듯이 으르렁거리며 표효했다. 거칠고 사나운 바다위에 둥실 떠있는 작은 배는 그야말로 일엽편주에 지나지 않았다. 파도가 치는대로 배는 출렁거렸고, 위로 솟아올랐다가는 아래로 곤두박질을 쳐댔다. 뒤집어지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면 천만다행이었다.

살동은 배가 흔들릴수록 젖먹던 힘을 다해 고리를 잡았다. 손에 쥐가 났다. 허리에 매어놓았던 망태의 끈을 풀어 고리에 끼어 손목에 감았다. 그 러자 손이 조금 편해졌다. 몸도 조금 고정되어 배에서 떨어져 나갈 염려가 그만큼 줄어들었다. 

배에서 떨어져 나가는 순간 끝장이다.

배는 점점 바다 가운데로  밀려나갔다.

반나절 가량쯤 지나면서 내려치던 폭풍우가 조금씩 수그러졌다. 이미 주위는 컴컴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위에는 세명만이 남아있었다. 성난 바다가 동료 여덟명을 삼켜버린 것을 그제사야 알았다.

"워메, 우리 세명뿐이라야."

"긍게, 모두 어찌 되뿌렀냐?"

"워메 염병할 놈의 폭풍같으니라구."

 

살동과 노를 붙들고 있던 만석, 그리고 서봉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서봉은 돛이 부러져 나간 밑둥을 잡고 버텨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파도는 여전히 출렁였지만, 배를 뒤집을 만한 기세는 아니었다. 배는 조류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만석은 노를 지을 힘도 없었지만, 사방이 어두웠고, 방향 없어 그냥 젓기를 포기한 상태였다. 해류에 몸을 맡기고 무작정 흘러갈 밖에 없었다.

어디로 흘러가뿐다냐?

"글게 말이여."

재수가 좋아, 물길을 잘타믄 탐라에 도착할지도 모르제.

파도를 따라 흔들흔들거리는 배에 주저앉은 채로, 무기력하게 중얼거렸다.

다들 어떻게 되었다냐?

바다로 떨어져뿌렀는디, 어찌 됐는지 누가 알겠는감?

살동과 서봉이 없어진 일행을 걱정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만석은 앞으로의 일이 걱정돼,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다.

 그나즈나 앞으로 어찌 성싶은가이? 깝깝하구만."

비가 그친 하늘은 별빛이 총총했다. 곧이라도 별이 쏟아져 내릴 같이 밤 하늘은 맑고 얕았다. 언제 그랬냐는듯 시치미를 떼고 있는 무심한 하늘이 얄미웠다.  

그나저나 배고파 뒤지겄네, 먹을 없을까이?

쓸려내려가 아무것도 없당께!

밤이 깊어가자 이들은 허기를 느꼈다. 먹을 것을 찾았으나 배에는 허기를 랠만한 아무 것도 없었다. 싣고온 식량은 물론, 반나절 넘게 작업해 놓았던 해산물도 모두 파도에 쓸려가버렸던 터였다.

바다위에서 어떻게 되려나?'

'살아서 무사히 돌아갈 있으면 좋으련만.

사나운 폭풍우에서도 용케 살아 남았다는 기쁨도 잠시였다. 세사람은 모두재수 없다.' 타박을 당할까봐 불안한 심정을 터놓고 말도 못했다. 서로의 감정을 건드리 않으려고 눈치만을 살폈다.

 살동은 작은 파도에도 흔들흔들 요동치는 작은 배안에 갇혀있는 자신들에게 별다른 뾰족한 수가 있을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연신 눈을 희번덕거리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저 주변에 작은 섬이라도 발견되길 바라는 마음의 발로였다.

컴컴한 바다위에서 불안한 마음을 안고, 한조각 희망의 끈을 찾기 위해 광을 빛내며 무언가를 찾고 있는 사이, 멀리서 어둠이 물러서기 시작하더니, 바다 끝에서 희미하게 여명이 올라오고 있었다. 밤을 꼬박 새웠던 것이었다. 날이 밝아 시계가 좋아지자, 이들은 더욱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살폈다. 그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뿐이었다.  

"워메, 이놈의 바다 지긋지긋하구먼."

   "그랑께 말이여. 근디 아무것도 안보이는 봉께, 겁나게 떠내려와 렀구만.

  세사람 모두 눈에 핏줄이갛게 서있었다.

 긍께. 항상 바위나 섬이 보였는데, 암꿋도 안보이는 처음이랑께. 큰일 부렀네, 그려.

배는 점점 고파왔다. 먹을 , 마실 없는 이들에게 차츰 두려움이 습하기 시작했다. 잘못하면 바다 위에서 굶어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던 것이었다.

, 살동아, 어뜰게 찾겄냐?

바다를 유심히 살피고 있는 살동에게 서봉이 물었다. 살동이 어렸을 때부터 오랫동안 배를 타고, 먼바다도 자주 나가 뱃길에 익숙하다는 알기에 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물었던 것이었다.

살동은 못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도 나름대로 배가 흘러가는 방향을 보며 물길을 찾아내려 애를 썼지만 도무지 수가 없었다. 방향을 없는 듣도 보도 못한 물길이었다.

워메, 좀해봐라. 사람 말이 말같이 안들리냐?

물길의 방향을 짐작할 수가 없어, 대답을 주저하고 있자 서봉이 역증을 내며 재촉했다.

나도 처음보는 물길이랑께. 솔찬이 먼바다로 밀려온 같구마.

모두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갑자기 뱃전의 방향이 바뀌었다. 머리위를 넘어간 해가 오른쪽에서 비추는 것을 보고 살동은 배가 남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 했다. 그러던 배가 갑자기 방향을 틀었던 것이다. 갑자기 해가 정수 뒤쪽에 서 비추어왔다. 남쪽아래로 내려 간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뱃전이 쪽으로 틀어졌다. 물길이 바뀐 것이었다.

워메, 이거 어쩌면 대마도 물길일지 모르겠는디?

뭐시라고? 대마도 물길? 그게 뭐다냐?

 아따, 나도 잘이야 모르는데, 왜나라로 가는 물길이 있다하더라고. 긍께 옛날에 어깨너머로 들은 적이 있구마.

'우리같이 쪼깐한 배들은 대마도 물길을 만나면 조선으로 못오고, 그냥 왜나라로 가뿌리는거 외에 방법이 없어야! 긍께 너무 밑으로 내려가믄 안돼 부린다, .'

살동은 오래전에 기억을 더듬으며 몸을 숙여 바닷물에 손을 넣어 물의 흐름을 가늠했다.

하룻 밤새 아무것도 먹질 못해 헬쑥한 얼굴을 하고 있던 서봉과 만석은 음에 살동의 말이 의미인지 모르고 멀뚱멀뚱하고 있다가, 왜나라는 소리가 마음에 걸렸던지 갑자기 얼굴색이 불안한 빛으로 바뀌었다.

 그럼, 어떻게 되는겨? 왜나라로 가는 거란 말이여? 워메, 엇지까이!  

 왜나라가 여그서 얼만데? 워메 나부렀네. 마실 물도 없고 말일씨.

 

대마도 물길을 배는 한나절을 흘러갔다. 사방은 망망대해뿐이었고, 셋은 점점 지쳐갔다.

 '왜나라든 어디든 제발 육지만 나타나줘라.'

이제는 어디라도 좋으니 도착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물과 먹을 것만 얻을 수 있다면 지옥이라도 못갈소냐 하는 심정이었다.

"워메, 바닷물이라도 쳐먹어야제, 당췌 견딜 수가 없네, 그려."

 "내말이 그말이여."

 무엇보다 입이 말라 견딜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한낮의 해는 가릴 것 없는 그들의 벌거벗은 몸통위로 사정없이 쏟아졌. 이들은 점점 탈진되어갔다.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릴 기세로 이글거리던 태양도 점차 서쪽으로 기울어갔다. 태양 이 오른 쪽 바다로 사라졌는가 싶더니, 다시 밤이 찾아왔다. 뜨겁게 내려쬐던 태양이 사라져 조금 나아졌다 싶었더니, 밤이 깊어가자 이번에는 밤바다의 추위가 엄습했다. 밤하늘엔 구름이 잔뜩꼈는지 달도 별도 보이지 않았다. 사위는 칠흑같이 어두워 한치 앞이 보이질 않았다. 허기와 추위가 동시에 엄습했다.  배는 너무 고파, 아무런 느낌도 감각도 없었다. 팔짱을 끼어 몸을 따뜻하게 하려 했지만, 수분을 품고있는 바닷 바람은 살갖에 차갑게 와 감겼다. 살갗이 얼어드는 느낌이었다. 셋 다 말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말을 하면 혀가 뻗뻗히 굳고 갈증이 더 심해졌다. 정신은 조금씩 혼미해졌다. 누가 먼저라고 말할 것도 없이 이들은 뱃바닥에 몸을 붙였다. 마지막 기대로 간간히 고개를 돌려 보지만 사방과 하늘은 그저 캄캄한 허공이었다. 마치 사방이 막혀 아무런 탈출구도 없는 그런 폐쇄된 공간에 갇혀있는 형국이었다. 희망의 빛이라곤 사방 어디에도 없었다.

"워메, 이런 고생하다 죽을 거믄, 바다에 빠져죽는 날뻔했구마. 제기랄."

"재수 옴붙는 소리 그만 . 마음 심란해징께."

기운이 다 빠져 신음하듯 하소연하는 동료들의 말을 곁에서 들으면서 살동은 자신이 서봉이나 만석처럼, 삶에 대한 미련이나, 애착이 그리 강하지 않 다는 것을 느꼈다.

어차피 부모형제 없고 아직 가정도 이루지 못한 홀홀 단신이었다. 그냥 죽지 못해 사는 삶이었지, 그리 즐거운 것도 좋은 일도 없는 삶이었다. 여기저기에 서 보자기라고 천대를 받기 일쑤였고, 수확이 조금이라도 좋다 싶으면, 공납이다,뭐다 현물세란 명목으로 죄다 관헌들에게 뜯겼다.

힘없고 배경없는 천예인지라, 뻔질나게 성곽 등의 축조와 보수, 선박 제조 등의 부역에 불려 다녔다. 그러고도 관헌들에게 조금이라도 대드는 모습을 보이면 얻어터지고, 뜯기고 고생은 배가 되었다. 힘든 삶이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먼바다로 나가, 가슴이 답답해지고 귀가 멍해지는 고통을 참으며, 열심히 바다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해 봤자, 생활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무에 그리 좋았던 삶이라 애착이 있다더냐? 그래 이리 죽는게 상팔자다.

체념의 심정이었다. 삶에 대한 애착을 버리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살동은 뱃밑창에 등을 대고 사지를 넓게 뻗었다.

그래, 바다에 살다 바다에서 죽으니 후회도 없다. 그동안 받기만 했던 바다에 미천한 몸이나마 바칠 있으니, 몸보시를 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사흘 동안 아무것도 입에 넣은 것이 없어, 배는 홀쭉하게 꺼져있었다. 배는 고프다 못해 아파왔다. 모로 눕는 것조차도 힘이 들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들은 모두 손을 바닥에 놓고 하늘을 향해 대자로 누워있었다. 배는 돛이 없는데도 출렁출렁 해류를 타고 빠르게 흘러갔다.

 '에라,모르겠다. 갈데까지 가보자.'

 살동은 생의 마감을 받아들이며, 지금까지의 삶의 궤적을 되새기고 있었는데, 끝이 가물거리다 의식이 몽롱해져 어둠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육지다. 육지여!

빈사상태로 잠이 들어있던 살동의 귀가 누군가의 고함 소리에 웅웅 울렸다. 눈이 번쩍 뜨였다. 탈진해 그대로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살아있었던 것이었다. 고함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바닥에 추욱 늘어져 있던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아직 날이 새기 전이라 주위는 컴컴했다.

서봉이 소리를 치며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 눈길을 돌리니, 마치 시커먼 타원 형 천정을 엎어놓은 같았던 하늘에는 군데군데 별이 박혀서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빛을 받아 시커먼 덩어리가 바다를 뚫고 올라와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양쪽으로 불쑥 솟아올라 있는 모양이, 아마 육지는 아니고, 섬인 같았다. 살동이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가, 다시 배의 가장자리를 잡고 몸을 세웠다. 기운이 없어 현기증에 어지럼이 일었다.

살동이, 저기 얼마면 도착하겠는가?

살동은 만석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하려는 , 입안이 바싹 말라 말이 떨어지질 않았다.

 으응, 어디 보드라고. 지금같이 흐르면 한식경이면 도착하겠는디!

 근디, 쩌가 어디더냐? 조선땅 맞냐?

 아따, 그걸 우째 알것냐. 도착해보믄 알겄지. 얼릉 물이라도 먹을 있었으 좋겄구만..

이제 살았다.

살동은 다른 두 동무의 얼굴에서 조금씩 화색이 도는 것을 보았 갈증으로 입은 바싹 말라 있고 혀는 백태가 눈꼽처럼 껴있어 말을 하기 어려운데도, 서로 말수가 많아졌다.

시커먼 덩어리로 보이는 섬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만석이가 일어나, 노를 잡았다.

어이차, 어이차

만석은 조금 전까지만해도 거의 탈진되어 이젠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에 그런 힘이 남아있었던지, 스스로도 놀랐다. 아무튼 조금이라도 빨리 상륙하고 싶은 마음에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노를 저었다.

배가 모래톱에 닿았을 때는 멀리서 해가 떠올라 주변이 훤하게 보이기 작했다. 모래톱 안쪽으로 산비탈이 있었고, 경사를 고른 땅에 갈대로 덮은  몇채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아주 자그만 해안 마을이었다.

아따, 여그 왜나란가 보네잉.

긍게말이여. 쩌그 집들이 조선집하고 모양이 달라뿌네.

워메, 그럼. 클나부렀네. 왜말도 모르고잉.

해가 왼쪽에서 올라오고, 우리가 위쪽에서 흘러왔응께, 여근 아래쪽이고,,,,   맞아야. 대마도 해류를 탄게 맞구먼, 그럼, 여긴 왜나라가 틀림없어야.

살동은 해류에 밀려 일본땅에 표착한 것이라는 확신을 했다.

 왜나라든 뭐든, 아따 죽이기야 하겄냐. 일단 물이라도 얻어먹자고.                                   

                       

                                 3

그곳은 일본땅 오도열도였다. 전라도 해안에서 남쪽으로 곧장 내려가면 른쪽 비스듬히 제주도가 위치해 있고 왼쪽 멀리로는 대마도가 놓여있었. 제주도와  대마도 사이를 지나, 남서쪽으로 내려가면 다섯 개의 섬이 군도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곳이 오도열도였다. 오도열도는 오래 전부터 일본령이었다. 규슈지역 나가사키에서 배를 타고 서쪽으로 한나절 가면 부딪치는 열도이다. 다섯개의 섬이 바다위에 점점이 열도를 이루고 있어 오도열도라 하였다. 크고 작은 섬들이 산재하고 있었으나 오래전부터 중국 등에서는 다섯개의섬 이라하여, 오봉 또는 오도라 칭해 왔다. 중국과 류큐( 오키나와) 교역상 들이 빈번하게 드나드는 해상무역의 거점이었다.

1543 포르투칼의 배가 동남해 지역을 항해 하다 폭풍우를 만나, 일본 타네가시마 (種子島) 표류하는 일이 있었다. 표류선에 실려 있던 포르투칼의 철포가 일본 본토에 전달되므로써 일본내 세력 판도가 바뀌게 되어, 이 표류 사건은 일본 중세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한다.

당시 일본열도는 지역의 강자를 중심으로 하극상과 영토확장 싸움이 극에 달했던 전국시대(戰國時代)였다. 철포의 화력을 알게 영주들은 전력 강화를 위해 너나할 없이 철포를 구입하려고 혈안이 되었다. 철포를 손에 넣은 영주들이 득세를 해나갔기 때문에, 철포를 소유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사활이 걸려 있었. 뿐만 아니라, 포르투칼 교역선의 표류로 일본에 전달 된 철포는 후에 일어나는 히데요시의 조선 침공에서도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포르투칼선의 표류는 일본뿐만 아니라 당시 중국의 왕조인 명과 조선 등, 동아시아의 역사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오도열도를 중심으로 활약했던 세력 중에는 중국 출신으로 일본명으로 오쵸쿠(王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표류선에 실려 있던 조총을 보고 필담으로 통역을 담당했던 인물이었다. 즉 조총이 일본에 전달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인물이었다.

그는 원래 오도열도를 거점으로 해적질을 했었으나, 이후에는 해적질을 그만두고 주로 교역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무역상으로 변모했다. 거상이 되어 많은 부를 축적했고, 오도열도를 중심으로 일대 세력을 이루었다. 그런데, 그가 초창기에 명나라에서 행했던 해적질이 문제가 되어, 결국은 체포되었고 명나라에 송환되어 처형을 당했다.

  오쵸쿠가 처형당한 , 오도열도가 무주공산이 되자 지역 토호인 우쿠씨 (宇久氏) 대두했다. 오도열도 북단에는 우쿠섬(宇久島) 있었는데 그곳을 지반으로한 우쿠씨가 세력을 확대해 오도열도를 지배해 나갔다. 오도열도 지역을 지배하는 맹주로 성장한 우쿠씨는 오도전체를 자신의 지배하에 두기 위해, 지반인 우쿠섬을 떠나, 오도열도에서 가장 큰섬인 후쿠에 (福江) 섬으로 본거지를 옮겼다. 아래 쪽에 있던 후쿠에섬으로 거점을 옮긴 우쿠씨는 그곳에 성을 쌓고 스스로 지역 성주가 되어 오도열도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살동 일행이 표류한 곳이 바로 우쿠씨의 영인 오도열도 중 일부였던 것이었다.

암튼, 인제 살았부렀구만.

근디 여그가  어디라냐?

육지랑가? 섬이랑가?

살동, 서봉, 만석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주절주절 서로 한마디씩 하며 민가를 향했다. 뭔가를 얻어먹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표착한 곳은 히노(日島)섬이었는데, 오도열도 가장 동쪽에 나카도오리(中通島)섬이 있었고, 아래에 히노섬이 붙어있었다.히노섬은 츠시마 해류(구로시오) 흐르는 길목이라, 곳에는 아주 오래전 부터 중국이나 조선쪽에서 어선들이 풍랑을 만나 표류하면 흘러 들어오는 길목이 되어있었다. 하늘이 꾸물거리고 바다가 요동을 치면 섬사람들은 밤의 뱃길을 밝혀주기 위해 꼭대기에서 불을 피워주곤 하였다. 그래서 원래는 일본어로 불을 의미하는 히노섬 즉 화도(火島) 불리웠다. 그런데, (), 불섬이라는 말이, 불길함을 연상케해서, 섬사람들은 이를 꺼렸다. 그래서 나중에 발음이 같은 한자 ([1]) 바꾸어, 화도(火島) 일도(日島) 바꾸어 표기해 사용해 왔다.

아무튼 츠시마해류가 흘러드는 곳이라, 바다가 한바탕 요동치고 후면, 배들이 표류하여 그곳으로 흘러 들어왔다. 대부분의 배는 파손된 상태로 밀려왔는데, 승선해있던 어부나 상인들은 대부분 사체로 발견되었다. 히노섬 주민들은 파손되어 떠흘러온 배에서는 물건을 습득했고, 사체와 유골들은 거두어 묻어주었다.    

운좋게 살아남아, 표착되었던 사람들중에는 나중에 원래의 본국으로 돌아간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본국에서 벼슬이나 하고 재산이 많은 사람들이야 비빌 언덕이 있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그렇지 않 은 서민들이야 비싼 뱃삯을 마련할 수도 없었거니와 본국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특별히 변할 것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어느 나라 백성인지는 그리 중요 하지 않았다. 머무른 곳에서 입에 풀칠을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했을 이었다. 입에 풀칠도 어렵다고 생각하면 떠나는 것이고, 먹고 살기가 괜찮다고 생각하면 아무데나 머무는 것이었다. 국적은 국적? 그런건 없었다. 오직 다하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 있을 뿐이었다. 고향을 그리워했으나, 섬에 표착 사람 , 고향으로 가봤자 뾰족한 없는 사람들은 그대로 정착을 하여, 생활을 영위했다. 더러는 텃세가 없진 않았느나, 그래도 그곳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새롭게 생활기반을 만들고, 정을 붙이며 살아갔다.

히노섬은 산악지형이라 농토는 거의 없었다. 주민들은 바다를 터전삼아 주로 고기를 잡아 생활을 했다.

우선 쩌집으로 , 물이라도 얻어먹자고.

 어느새 등뒤로 올라온 해는 바다 위에 하얀 햇살을 비추었고, 반사된 빛은 섬전체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살동은 싸리 나무로 엉기성기 울타리를 만들어 놓은 담장을 얼핏 넘겨 보았다. 곤색으로 물들인 무명천을 몸에 걸치고, 허리띠를 묶은 복장의 아낙이 마당에서 쭈그려 앉아 어물을 뒤집고 있었다. 살동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쩌기 쪼깨 얻을 있는가요?

 다레나노?(누구요?)"

 " 물을 쪼깨,,,,"

 "나니 유또로노까 와까랑.(뭔소리 하는지 모르겠소!)

 “………."

 말이 통하질 않았다. 그들이 왜말을 알리가 없었다. 서로 멀뚱멀뚱 쳐다볼 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만석이 나섰다.

 우린 조선서 왔는디, 모르요?

 "………."

 아따, 말이 안통해 부네. 워쩌면 쓰겄냐.

 자신들의 말이 통하지 않음을 알고 살동과 일행은 일순, 자신들이 말로만 왜나라로 흘러왔다는 것을 그제서야 실감했다.

물을 뭐라 한다냐?

무르. 무르.

 갈증도 나고 허기가 죽을 지경이었는데, 말이 통하지 않자, 우선 물이라도 얻어 먹기 위해 손을 입에다 대며, 손짓 발짓으로 물마시는 시늉을 해댔다. 세사람 모두 필사적이었다.

"나니? 미즈? 미즈나노네. (뭐요? ? 물이구만.)

 

이들의 시늉을 겨우 알아 , 아낙이 우물에서 물을 주어 겨우 목을 축일 있었다.

"꿀꺽,꿀꺽."

물을 마시고 난 이들은 배는 여전히 고팠으나 그래도 같았다. 아낙이 바깥으로 나갔다 싶더니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어민들은 이들이 가리키는 배를 보고, 살동일행이 표류민이라는 것을 알았다. 적대감은 없었다. 섬 사람들은 친절하게도 이들에게 조로 죽을 갖다줬다.

워메, 생명이 은인이 따로 없구만요. 암튼 엄청 고맙구만요.”

살동일행은 통하지도 않는 조선말로 인사를 하고는, 허겁지겁 그릇째로 죽을 훌훌 마셨다. 죽을 비우고 겨우 허기를 달랬다 싶었는데, 갑자기 조선말이 들려 왔다.

어디서 왔소?

“야? 워메, 조선말을 할 쭐 아는까보요?”

  "나도 조선에서 표류해 이리로 밀려온 사람이외다."

워마, 그라요. 우린 쩌기 조선 옥주진도의 옛이름에서 왔는디라우.

말이 안통해 답답해 하던 터에, 조선사람을 만난 이들은 구세주를 만난 같았다.

"풍랑을 만났구려?"

", 죽고 우리 서니만 살아남았당게라우."

마치막아놓은 방죽이 터진 이들은 말이 터져나왔.

그렇게 허기를 면한 , 그의 안내로 관리가 있는 와카마츠섬으로 넘어갔 다. 와카마츠섬에는 히노섬보다 조선에서 표류되어 정착한 사람들이 많았다. 굳이 고향땅을 찾을 필요를 못느꼈던 사람들이었다. 어민으로 살아 그들로서는 어디든 바다가 있으면 생활의 터전이 되었다. 고향에 돌아간들, 다르게 생활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요, 특별나게 좋을 것도 없었다. 오히려 탐관오리들의 닥달이 덜한 이곳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리 큰일 일은 없을테니까 너무 걱정마오.

조선에서 흘러와 정착한 사람들은 이들이 고향에서 사람들이라는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그들을 살갑게 대해 줬다. 살동 일행은 말이 통하는 것만으로도 같았다.

 워메 인제 제대로 되었구먼.

 서봉과 만석이 유난히 기뻐했다.

와카마츠섬에 있는 관리는 정식 관리가 아니고, 마을의 촌장 역할을 하는 로였다. 촌로가 관리 대신 마을 대표로서 권리를 위임받은 것이었다. 일종의 공동체의 장이었다. 촌로는 조선 사람의 통역을 통해 간단한 확인 질문을 하였 .

 무얼 하는 사람들이냐?

 바다에서 해산물을 따는 사람들입니다. 주로 전복을 채취하고 있습니다."

일행 열한명과 남쪽으로 내려왔다가, 풍랑을 만나 죽고, 저희만 여기까지 떠내려 왔습니다.

통역을 통해 살동일행의 말을 들은 촌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선인 통역에게 일본말로 다음과 같이 전했다.

조선말을 아는 네가 저들을 거두어 정착하도록 도와주거라. 배를 타고 왔다니,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돌아갈 있도록 해주어라.

알겠습니다.

살동과 일행은 그렇게 히노섬에 정착했다. 처음에는 고향에 돌아갈 생각을 많이 하였으나 배의 파손이 심했고, 섬사람들은 그들에게 배를 내줄만한, 아니 배를 수리해줄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들은 바로 조선에 돌아갈 없다는 알고 당분간 이곳에 머물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배가 없는 그들은 전복잡는 일을 포기하고, 섬사람들을 따라 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잡았다. 히노섬의 어부들은 배를 다루었다. 고기가 많이 모이는 곳을 알았기에, 그들을 따라 다니며 고기를 잡고, 수확을 나눠 받았다.

조선에서는 배를 타고 어업을 하는 것도 관의 허가가 필요했지만 이곳 에서는 그런 제한이 없는 같았다. 수확물의 일부는 촌장에게 바쳐졌고, 렇게 모인 고기들은 말려져, 어디론가 실려갔다가, 다시 쌀과 등의 식량이 되어 돌아왔다.

그렇게 여섯달쯤 지나자, 세사람은 섬생활에 많이 적응을 하였고, 왜말도 조금씩 배워 알아듣게되었다. 살동은 원래 머리가 영민했고, 언문도 았다. 그는 왜말을 들으면 나뭇가지로 땅위에 언문으로 표시하며 왜말을 혔다. 그래서인지 다른 친구들보다 왜말을 빨리 익혔다. 단어는 그리 많지 았지만, 아무튼 생활을 위한 의사소통에 어려움은 없었다.

셋은 조선사람들이 내준 작은 움막에서 함께 기거했다. 배운게 도둑질이라 그들은 가끔 포작 기술을 살려, 근처 바닷 속으로 들어가 해산물을 따곤 하였다. 살동의 솜씨는 뛰어나 섬사람들도 살동이 따오는 실하고 통통한 해삼이나 전복을 보고는 탄복을 했다.

  어느날 날씨가 맑은 아침 날이었다.

 어이,사르동이, 오늘 날이 좋아 먼바다로 배가 나가는데 함께 가지.

  섬사람들은 살동이란 발음이 사르동으로 들리는지 항상 사르동이라 불렀다. 배가 뜬다는 소식을 서봉과 만석도 함께 어부들을 쫒아서 배를 탔다. 민들은 바다로 나가 대나무를 쪼개 만든 원통 그물이나 삼베망을 이용해 기를 잡았다. 몸이 날래고 잠수에 익숙한 살동은 대통을 잡고 물에 들어가기도 했고, 물속에서 대통을 들어올리기도 했다. 섬사람들은 힘이 좋고 몸이 날랜 살동이 물속에서 대통이나, 삼베망을 잡아 주면 고기잡기가 수월해, 아주 좋아했. 살동과 함께 작업을 하면 항상 수확이 좋았다.

그날도 살동이 부지런히 움직인 덕에 어획이 좋아 배위로 고기들이 수북이 쌓여 무렵이었다.

저게 뭐여? 집채만한 배가 다가오네, 그려.

살동이 수평선 멀리서 다가오는 배들의 무리를 보고 크기에 놀라 왜말로 중얼거렸다. 조선에서의 경험으로, 정도 배라면 대개가 수군들이 움직이는 군선이나 한성으로 진상품을 바치는 상선이었던 것이다. 

“어허, 큰일났네. 암튼 조용히 하고 쳐다보지 말게.”

왜그럽니까?”

저들은 교역을 핑계삼아 바다를 떠돌며 약탈을 주로 하는 해적집단이네. 가까이 오면 그냥 머리를 숙이고 모른 척하게.

 살동과 어부가 말을 주고 받고 있는데,

 워메, 저거 , 왜구네. 왜구들이여. 아이고 이젠 죽었당께.

 다가오는 배위에 타고 있는 왜구들의 복장을 보고 만석이가 기겁을 하면서, 조선말로 살동과 서봉에게 침을 튀기며 말을 더듬었다. 섬의 어부들도 안색이 변했다. 모두 긴장을 하는 모습이었다. 아무일 없던 것처럼 바닷속에 넣었던 그물을 걷어 올리고 배를 돌리려 때였다. 왜구들이 타고있는 큰배는 물살을 가르며 옆으로 달라붙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커다란 배에서 밧줄이 날아왔다.

 밧줄을 잡아 배에 묶도록 하라. 시키는대로 하지 않았다가는 목과 몸이 따로 것이다.

그들의 손에는 어구대신 날카로운 칼이 들려 있었다. 섬사람들은 반항하지 않고 시키는대로, 배모서리에 밧줄을 감고 있었다.

어디에서 나온 놈들이냐?

배위에서 일본말이 들려오자 살동은 얼굴을 들어 왜구들의 배를 쳐다보았다. 굵고 넓은 판자로 만들어진 배였다. 크고 단단하게 보였다만일 배가 곧장 부딪쳐 온다면 그들의 작은 배는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 같았다.

왜구들은 배위에서 아래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는데, 모두 웃통을 벗은 채였다. 흰이를 드러낸채, 손에 들고 있는 칼을 허공을 쑤시듯 휘둘러댔다. 살동은 날이 하얗게 칼을 보자, 겁이 덜컹났다. 날카롭게 갈아진 칼끝은 뾰족한게 살기를 내비추고 있어 섬칫했다. 살동은 겁이나얼른 고개를 숙였다. 왜구들과 어부들이 주고 받는 말이 들려왔다.

 저희들은 여기서 얼마 떨어진 히노섬에서 나온 어부들입니다.

그래, 우리가 오랫동안 생선맛을 못보았으니 잡은 물고기가 있으면 아라.

세명이 배위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와 날쌔게 옮겨탔다. 중의 하나가 칼이 들어 있는 칼집으로 만석을 툭치며 명령투로 말을 하였다.

밑창에 잡아 놓은 생선을 꺼내 올려 보아라.

 

만석이 일본말을 알아들어 어리둥절하자, 왜구가 역증을 내며 만석을 칼집으로 내려쳤다.

자식이 말이 안들리나! 죽고 싶어 환장했나? 이놈이 사람을 무시해?

화가 왜구가 칼을 뽑아들었다얼른 살동이 앞으로 나서며 왜구를 섰다.

죄송합니다. 친구가 아직 이곳 말을 몰라서 그런 뿐입니다.

뭐라? 말을 몰라? 그럼, 네놈들은 히노섬에서 아니란 말이냐?

아닙니다. 히노섬에서 것은 맞습니다. 저희는 원래 조선 사람입니다.  랑을 만나 곳에 표착을 했습니다. 지금은 히노섬에서 살고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서투른 일본어로 더듬거리며 살동이 설명을 하자, 다른 왜구들도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살동의 곁으로 다가왔다. 만석은 칼을 뽑아든 왜구를 보고 겁을 먹어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잘못했응께살려주시라고요."

 

 무릎을 꿇고 두손을 머리위로 올려, 싹싹 빌고 있었다.

 "이놈이 뭐라 하는거야?"

 "잘못했다고 살려달라 빌고있습니다."

 왜구가 만석이 하는 말을 몰라 살동에게 물었다

 “조선에서 흘러왔다고?

 “, 그렇습니다.

살동과 왜구가 문답하고 있는데, 배위에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던 왜구 , 머리에 투구를 쓰고 있던 자가 갑자기 소리로 외쳤다.

 “뭐라고 했느냐? 그놈들이 조선에서 왔다고 했느냐?

 “, 그렇습니다. 이놈들이 조선출신이라 우리말을 모른다고 하는군요.

 “그놈들을 이리로 끌어오너라!

 “이놈들 전부를 말입니까?

 “아니, 조선에서 놈들만 끌어올리란 말이다.

 “알겠습니다.

 칼을 뽑아 들고있던 왜구가 칼끝을 살동의 목에 대며 외쳤다.

 “, 이놈, 여기 너와 같이 조선에서 흘러온 놈이 누구냐?

 “셋입니다.

 “거짓말을 하면 죽을 알아라! 말을 시켜보면 금새 알수 있다.”

살동이 얼른 손짓으로 서봉과 만석을 불러, 이들 셋은 이물쪽에 모였고, 다른 히노섬 어부들은 뒤쪽인 고물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왜구들은 한사람 사람에게 말을 시켜 왜인인지, 조선인인지 말투를 확인했다.

네놈들만 배로 옮겨타라.

확인을 끝낸 , 왜구들은 이들에게 자신들의 배 옮겨타도록 했다위에 있던 왜구들이 막대와 손을 아래로 뻗어 이들이 옮겨타는 것을 도왔다

히노섬 어부들은 이들이 돌아올 것으로 기대했으나, 왜구들이 교 역선은 이들을 내려주지 않고,그대로 돛을 올려 먼바다로 나가버렸다.

저들이 왜구들에게 잡혀갔으니 이제 죽는게 아니겠나?

그냥 죽이기야 하겠나?

아무튼 저들에게는 안됐지만, 우린 운이 좋았네. 어서 섬으로 돌아가도록 하세.

한편, 왜구들은 살동일행이 교역선으로 옮겨타자, 그들의 손을 뒤로 , 박을 했다그리고는 쪽에서 어깨를 눌러 무릎을 꿇게 했다. 갑판위에 무릎을 꿇고 있던 살동과 만석, 서봉은 겁을 잔뜩 먹고 있었다.

왜구들의 인상은 하나같이 험상 궂었다. 모두가 눈이 위로 치켜올려져 었다. 탐욕에 가득 눈빛이었다. 남의 물건을 아무렇지않게 약탈하고, 죄없 사람들이라도 살인을 하는 자들이었다.

이젠 꼼짝없이 죽었구나!

막막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온몸을 휩쌌다

풍랑을 만나 동료들이 바다로 휩쓸려 내려갈 때도 구사일생으로 운좋게 살아남았던 그들이었다. 그래서 운이 좋다고 서로 자위를 했던 터였다

, 이제 운이 다했구나.

히노섬에 표착해 여섯달 동안 그래도 나름대로 평안하게 지내오던 터였다.

드디어, 것이 왔구나.

이럴 알았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조선으로 돌아갈 …’

죽는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갔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들의 뒤에는 감시병인 왜구가 끝을 올려놓고 있었다. 살동은 살이었는데, 칼끝이 닿아 있어,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칼끝이 따끔하게 살갖을 찔렀다. 섣불리 반항했가는 시퍼런 칼끝이 그대로 등을 뚫고 들어올 같았다. 셋중에서도 서봉이 가장 겁에 질렸던지, 그의 턱이 덜덜 떨리며 이빨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살동의 귀에도 들려 왔다.

이대로 죽는구나.

모든 체념하고 죽을 때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일본말이 크게 터져 나왔다.

조선 어디에서 흘러 놈들이냐?

 왜말을 어느 정도 아는 살동이었지만 처음엔 무슨 소리인 몰라,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저놈의 고개를 들어올려라.

왜구 하나가 숙이고 있던 살동의 머리를 사정없이 잡더니들어올렸다.거기에 머리에 투구를 왜구가 두발을 넓게 벌리고, 거목처럼 갑판위에 버티고 서있었다. 나이는 사십대 전후로 눈빛이 날카로웠다. 두령이었다.

이놈. 우리말을 알면서 대답을 안하느냐?

? 무슨 말씀인지?

살동이 말을 알아듣고 일본말로 더듬거리자, 왜구는 다시 천천히 고쳐 말했다.

어디에서 왔느냐?

, ! 옥주(진도의 옛이름)에서 왔습니다.

그곳이 어디냐?

저기 조선 아래쪽에 있는 섬입니다.

살동은 일본말을 더듬거렸으나뜻을 분명히 전달키위해 고개를 들어 하늘방향을 잡은뒤에 머리로 오른쪽을 가리켰다.

그곳의 지리를 잘아느냐?

, 그럼요.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알다 뿐이겠습니까요. 게다가 전복을 잡으러 여기저기 다녔기 때문에 남쪽지방을 많이 알고있습니다.

왜구 두령이 묻는 말투를 듣고 살동은 불현듯이 수도 있다는 생각이 었다. 그는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 상대의 일본말을 알아들으려 애를 썼다.

' 한번 잘못하면 목숨이 날아간다.'

군데군데 모르는 말도 있었으나, 모르는 말은 문맥을 생각해 짐작하며, 하여간 있는 일본말을 총동원해 대답을 하려 애썼다.

 그럼, 쓸모가 있겠군. 다음에 우리를 그리로 안내해라!

 ?

 살동은 말은 알아들었지만 무슨 뜻인지를 몰랐다. 그렇다고 되물을 수도 없었다섣불리 되물었다간 화를 돋우어, 그대로 칼을 맞을 지도 몰랐다. 언가 뜻을 이해할 있는 실마리를 찾기 위해 주변에 있던 왜구들의 굴을 두리번 거리며 바라 보았다.

 “안내하라는데, 말을 못알아듣느냐?

 

 옆에 있던 왜구가 다시 한번 말을 주었다.

그들의 의 말이 끝나자, 고로와 같은 연령대인 히코베가 반문을 했다. 

 “, ! 알겠습니다.

 '이젠살았구나.'

 살동은 너무 기뻐 손이 뒤로 묶인 , 자리에서 머리를 갑판에 조아리 절을 하는 시늉을 했다

이놈들 손을 풀어주고 먹을 것을 주도록 해라.

만석과 서봉은 포박이 풀어지자, 살았다는 것을 눈치로 알고 서로 손을 잡고 기뻐했다. 

워메, 인제 살아부렀네. 살아부렀어.

그대로 황천으로 가는지 알았그만.

살동아! 니가 왜말을 알아들어서 살아부렀다. 아니믄 우린 죽어뿌렀다. 하이고. 그라냐? 만석아. 야가 생명의 은인이여.

만석아! 우리도 살아남을라믄 왜말을 째깐 배워야 쓰겄다,.

그려잉, 그라구만. 듣고 봉께 그말이 맞네 그려! 배워서 남주냐는 말이 맞어 떨어져부렀그만. 워메 증말로 쪼금 전까지만 해도 뒤지는 알았당께.

왜구들은 살동 일행을 자신들의 본거지로 데려갔다. 그들은 길잡이용으로 끌려간 것이었다.

살동의 일행이 끌려간 곳은 오도열도에서 가장 섬인 후쿠에섬이었다. 열도의 영주인 우쿠씨의 거성이 있는 곳이었다. 개의 산으로 이루어진 섬은 넓어 농토도 제법 많았고, 그만큼 호구수도 많이 살았다. 남쪽에 높이 솟아오른 산이 있었는데, 산등성은 바다를 향해 완만한 경사를 이루었다. 산비탈이 끝나는 곳에서 바다를 향해 평지가 있었는데, 곳에 영주의 거성 있었다. 그곳이 섬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영주인 우쿠씨가 후쿠에섬을 거점으로 오도열도 전체를 지배 관리하고 었지만, 해안가 곳곳에는 어민과 왜구들이 뒤엉켜 살고 있었다. 왜구들은 민들과 함께 살며 때로는 어업도하고 교역도 하면서, 필요에 따라서는 적질을 하고 있었다성주인 우쿠씨는 이들을 통제하지는 않았다. 어민들과 섞여 사는 이들은 통제하기도 어려웠지만성주로서 때로는 그들이 요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성주는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에게서 세물을 거두거나, 성내에 필요한 물품을 그들에게 조달받았다때로는 그들을 통해 교역도 해, 얼마간의 이득을 내어 재정을 채우는 부분도 있었다. 요악이었다

살동 일행은 후쿠에섬 동쪽으로 바다를 면하고 있는 얕으막한 산밑 안가로 끌려갔다. 산능선 아래에서 해안으로 이어지는 평지에는 마을이 형성되 있었다. 언뜻보면 어촌마을이었으나, 안쪽에는 돌성이 마을을 둘러싸고 었다. 두령이 거주하는 곳으로 보이는 산중턱 움막은 사방이 돌로 둘러쳐져 있어, 천혜의 요새였다. 바닷가에는 망루가 높이 쌓아올려져 있었고그곳에서 왜구들은 먼바다의 움직임을 살펴볼 수가 있었다.

왜구들의 본거지는,영주가 있는 지역에서 동쪽으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았다. 그러나 동쪽으로는 산이 가로 막혀 있어, 육지로 접근하기가 용의치 지역이라, 거의 치외법권지역이었다.  

신사부로 저놈들에게 거처를 주고 함께 지내도록 하라!

하아, 알겠습니다.

두령의 명령을 받은 신사부로라는 왜구는 살동일행을 끌고산중턱으로 올라갔다거기에는 경사를 긁어 바닥을 평평하게 만든 움막이 있었다움막에는 그들 말고도 넷이 있었다. 그곳에서 함께 생활을 하였다. 움막 가운데는 땅을 파,불을 피울 있게 화덕을 만들어 놓았다. 그들은 그곳을 이로리 (圍爐裏) 불렀다. 나중에 일이지만다른 움막에는 중국에서 잡혀 사람도 몇인가 있었다. 그들은 이곳 생활에 익숙한지 발음이 조금 서툴지만 왜말로 이야기하고 떠들고 웃곤하였다.

산비탈을 내려가면 바닷가 오른쪽으로는 오두막이 많이 있었다. 그곳에는 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배를 띄워 주로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며 생활을 했다. 그들은 이들 왜구들을 무서워하지 않았고그들 앞에서 잡아온 선을 널고, 말리고 하였다 때론 이들 왜구들에게 생선을 가져오기도 하고 이들의 약탈품을 받아가곤 하며 자연스럽게 교류하고있었다

왜구들은 커다란 교역선 외에도 작은 어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왜구들은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진 않았다. 이들은 평소에는 놀고 먹는 에만 치중하다가 날씨가 좋은 날을 택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이들은 교역과 어선을 가장해 해적질을 하였다.

왜구들은 한번 출항을 하면 먼바다로 나가 며칠에 걸쳐 항해를 했다. 가지고 물건을 주고 식량과 바꾸기도 하고, 기회다 싶으면 약탈도 했다. 배에는 병장기를 감추고 있었다. 두령급들은 칼을 다뤘다. 주로 남쪽으로 내려 류큐(오키나와)국이나, 루손 (필리핀), 그리고 중국해역을 침범하여 자를 강탈해왔다. 약탈품중 식량 등은 자체 소비하였고, 도자기나 장신구   귀중한 물건은 규슈의 나가사키나 오사카 근처 사카이에 가져가 교역을 했다. 백여명의 인원이 무리를 이루어 움직였다. 이들 중에는 중국인, 류큐인, 손인도 섞여있었다. 포로로 잡혀온 사람도 있었고, 풍랑을 만나 표착된 사람들도 있었다. 왜구들의 생활은 일반 어민들의 비해 넉넉한편이었다. 한번 약탈을 다녀오면 며칠씩 먹고 마시고 즐겼다. 여자들을 포로로 잡아오면, 노리개로 삼거나 잡일을 시켰다.

섬으로 잡혀온 사람들은 그들이 어디로 잡혀왔는지도 몰랐다. 수도 었다.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자포자 상태로 그들속에서 함께 생활을 했다. 

 



[1] 일본어로 불() []라 읽는데, () []로 발음을 해, 발음이 같다. 火島(화도) , [히노섬]이라는 발음을 같은 발음인 日島(일도)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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