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니시 유키나가(小西 行長)
1
사카이(堺)는 오사카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였다. 일본에 들어오는 모든 박래품(舶來品)은 사카이를 통해 일본 전국에 보급되었다. 중국의 명을 비롯 하여 류큐 왕국(현재 오키나와), 그리고 멀리 남만(南蠻)과 서양에서 상인들이 교역을 위해 사카이로 몰려왔다.시가 전체가 상인들로 북적대었고, 상점은 이국의 상인들로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루었다.서양인들이 동양의 베니스라고 표현한16세기 중엽, 일본 제일의 국제교역 도시이며 무역 중심지였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활기가 넘쳤고, 화주로 보이는 사람들은 각종 무뉘로 장식된 울긋불긋하고 화려한 옷을 걸치고 있었다.키가 크고, 비단 옷차림 을 한 채, 서투른 일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웠는데, 이들은 모두 외지에서 온 상인들이었다.
이러한 사카이의 모습을 말을 탄 채 언덕위에서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청 년이 있었는데, 그는 다름아닌 바로 후에,조선 정벌군 제1대 총대장을 맡는 고니시 유키나가 (小西行長)였다.
그는 사카이에서 약종상을 경영하는 거상 고니시 류사 (小西 隆左)의 차남 으로 태어났다. 어린시절 아명은 야쿠로(彌九郞)였다. 생부인 류사는 약종의 재료뿐만 아니라, 교역품도 취급하며 서양인과도 활발하게 교역을 하였다. 그는 서양인들과의 거래를 통해 일본에 진출해있던 예수회의 선교사들과도 두터운 친분을 쌓고있었다.
일본에 천주교인 가톨릭이 전달된 것은 1549년경으로, 유키나가가 태어나기 여섯해 전의 일이었다. 예수회의 일원인 선교사 프란시스코 자비엘이 포교 를 위해 인도지나해를 건너 일본을 찾아왔던 것이 그 시초였다. 자비엘은 로욜 라가 창설한 로마 가톨릭 수도사 모임인 예수회[1]에 속해있었다. 당시 가톨릭교도 중에서도 개혁파에 해당하는 예수회는 창립 당시부터 청빈과 정결을 내 세웠다. 그리고 가톨릭의 선교가 유럽에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창했다.
이러한 예수회의 주장이 받아들여져,가톨릭의 세계 선교화가 결정되었고,신앙심이 독실하고 인격적으로 뛰어난 수 도사들이 세계 각지에 파견되었다.자비엘은 처음에는 인도의 고아지역으로 파견돼, 선교 감독관을 맡았다.개방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자비엘은 이교도들 에 대한 선교에 헌신적으로 힘을 기울였다. 고아지역을 거점으로 포교활동을 하던 그는 선교 범위를 점차 넓혀, 말라카(현 말레이시아)까지 진출했다. 그러 던 차에 그곳에 거주하던 일본인 야지로(弥次郎)를 만나, 그를 세례시킨 후, 그를 통역으로 삼아 일본으로 건너왔던 것이다. 처음 도착한 곳은 사츠마(현 카고시마) 지역이었는데, 야지로가 그곳 출신이었다. 사츠마(현 카고시마) 영 주에게 선교 활동을 허가 받은 후, 자비엘은 열심히 포교활동을 하였고, 그의 개방적이고 헌신적인 포교에 힘입어 일본에서 많은 천주교도들이 생겨났다.
일본인들은 당시 불교와 고유 종교인 신도(神道)만을 믿고 있었다. 자비엘은 그러한 일본인들을 위해 천주교 교리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등, 현지 실정에 맞춘 적극적인 포교를 펼쳤다. 뿐만아니라 일본의 정치구조를 파악하고는 영주들에게 접근해, 서양의 지도와 망원경 등을 바치며 지배 계급인 귀족들의 환심을 샀다. 그의 이러한 적극적인 외교 활동 결과, 많은 영주들이 가톨릭의 선교활동을 인정했다. 천주교가 초창기 일본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었다.
자비엘은 포교 과정속에서 불교가 일본인들의 정신세계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것을 깨닫고는 불교 승려를 만나는 것 조차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불교 승려들을 만나 적극적으로 종교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좀 처럼 일본의 승려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이를 타파하기 위해 일본 불교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중국으로 들어가 선교를 하기로 결심한다. 일본을 떠나 중국에 들어갔으나, 중국 광동(廣東)지역 남해의 상천도(上川島)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46세의 나이(1552년)로 타계하게 된다.
자비엘의 일본 도착보다 여섯해 전인 1543년에는 포르투갈 무역선이 폭풍을 만나 일본 규슈 남단에 위치한 다네가시마(種子島)에 표류했다. 그 배에 는 당시 서양에서 발명 개발된 화승총이 가득 실려져 있었는데, 철포를 본 일본인들은 그 화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는, 그 위력에 기절초풍을 하였다. 그들의 눈에는 화승총의 파괴력이 약육강식이 만연하던 전국시대의 세력판 도를 바꿔 놓을 수 있는 무기로 비춰졌다.
표류선에 실려 있던 화승총은 곧 일본 본토에 전달되었고, 각 지역의 맹주들은 화승총을 손에 넣기위해 혈안이 되었다. 이익을 위해서는 발가벗고도 백리를 간다는 상인들이 이를 알고 가만히 있을리가 없었다. 제일 먼저 사카이의 상인들이 발빠르게 움직였다.
“화승총뿐만 아니라 서양과 남만에는 많은 문명기기와 교역물이 있는 것 같소이다.”
“그 물품을 우리 사카이 상인들이 직접 교역하기위한 방법이 무엇이 있겠소?”
“배를 타고 멀리 남만과 서양까지 가는 것이 위험할 뿐만 아니라, 무사히 간다해도 그들이 사용하는 말을 못알아들으니, 우리가 직접 배를 뛰우기는 어려 울 것 같으오.”
“서양과 남만 교역을 독점해야 많은 이익이 남을 터인데, 어찌하면 좋겠소?”
“서양의 선교사들이 자주 왕래하고 그들이 우리말을 잘 아니, 그들과 통하면 교역을 독점할 수 있을 것이오.”
서양과의 교역을 위해 사카이 상인들은 선교사들과 교류할 필요성을 느꼈고, 반면 선교사들은 사카이 상인들을 통해 선교기반을 다져나가기로 했다. 그 결과 상인들은 서양과의 교역을 통해 많은 이익을 창출했고, 선교사들은 상인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하였다.
상인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알고있던 불교와 신도와는 달리 천주교의 '하느님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고 하느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아 천당 에 갈 수 있다.’는 단순 명료한 교리에 끌렸다.
선교사들의 적극적인 포교활동과 교리, 게다가 화승총을 둘러싼 서양과 남만 교역의 필요성이 서로 맞물린 것이었다. 사카이의 많은 상인들이 선교사들 과 친분을 쌓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천주교에 귀의했다.
사카이의 약종상이었던 유키나가의 부친 류사 역시 이러한 배경으로 선교사들과 교류를 맺고, 천주교에 귀의하게 됐다. 류사는 독실한 천주교도였다. 이러한 부친의 영향을 받은 유키나가 역시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그의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누스였다. 어려서부터 그 총명함을 인정받았다. 아이적부터 몸집이 커, 또래 사이에서는 언제나 대장노릇을 하였다. 그런데 성격만은 종교적 영향을 받아서인지 조용하고 침착한 편이었다. 당시는 하극상이 만연하였던 전국시대였다. 출세에 대한 야망을 지니고 있는 젊은이라면 누구나 사무라이(무사)의 길을 택했다. 시대적 상황이 그러했다. 입신양명을 위한 가장 빠른 길은 사무라이가 되는 길 뿐이었다. 싸움터에 나가 공을 세우기만 하면, 그 공을 인정받아 일국의 주인인 성주도 될 수 있었다.
조용한 성품의 유키나가였지만, 성장하면서 시대적 상황을 깨닫게 되었고, 젊은 가슴속에 타오르는 야망을 억제할 수 없었다. 이미 그때부터 그는 가업을 이어 약종상을 경영하는 일보다는 사무라이가 되기로 작심을 하고있었다.
내륙쪽 언덕위에 올라 사카이 항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유키나가는 발을 들어 뒤꿈치로 말의 복부를 힘껏 찼다.
“이랴!”
말의 고삐를 당기자 말은 언덕아래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유키나가가 고삐를 죄면서 옆구리를 다시 한번 내지르자 하얀 빛의 털을 날리며 달리던 백마는 한번 움찔하더니, ”히힝” 콧바람을 내며 더욱 무서운 속도로 내달렸다.유키나가는 애마인 백마를 타고 사카이 지역 여기저기를 치달렸다.
15세기 중엽부터 전국시대로 접어든 이후, 일본 각지에서는 100여년에 걸쳐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속에서도 사카이만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사카이는 정치와 분리되어 독립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상인들이 스스로 결탁하여 자치적으로 운영을 하였으며, 절대 영주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유 상업지역을 유지해왔다.
가끔 강력한 무력을 갖고 세력을 확장시킨 영주들이 사카이까지 진출해 사 카이를 지배하려 들었다. 그렇지만, 사카이가 오랫동안 자치를 유지해 왔다는 점과 상인들의 군비와 결속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그들은 실리를 택했다. 영주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카이를 복속시키지않고 자치를 인정했다. 즉 필요한 물자를 공급받고, 적당히 세금을 거두어 재정을 충당하는 것이 통치에 유리했기 때문이었다.상인들은 세금을 내고 지배자인 영주들의 보호를 받았다.일종의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가 성립 유지되었다.
사카이의 상인들은 자치를 인정받기는 했지만, 내심 항상 불안했다.그들은 평생에 걸쳐 자신들의 축적해 놓은 재산과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 도 있다는 위기감에서였다. 그들은 만일을 위한 사카이의 방어를 위해 노심 초사했다. 물론 자치적으로 군사를 보유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시설은 갖출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성을 쌓거나 무력을 지니는 일은 금지되어있었다. 그래서 사카이의 유력 상인들이 모여 공동으로 자금을 차출했고, 그 자금으로 사카이 중심지 주변으로 해자를 파고 물이 흐르도록 해놓았다.무력을 지닌 외부 세력의 침입을 조금이라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유키나가는 언덕을 내려와 사카이시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와 방어호를 따라 질풍같이 말을 달렸다. 가슴을 짓누르는 뭔지 모를 답답함을 내치고 싶었다. 적토마처럼 날쌔게 달리는 말위에서 맞부딪쳐 오는 바람을 거스르지 않으려고,몸을 수그리긴 하였으나, 부딪쳐 오는 바람은 그의 머리와 어깨를 강하게 스치며 지나갔다.
유키나가는 달리는 말위에서 더욱 말 잔등에 채찍을 가했다. 정해진 운명을 거역하고,다가오는 운명을 맞부딪쳐 내려는 의지였다. 질풍같이 달리던 백마가 거친 숨을 내몰아 쉬었다.
미친듯이 말을 달려 사카이를 서너바퀴 돌고 난 후, 유키나가는 말을 마굿간 하인에게 맡긴 후,곧장 친부인 류사가 있는 차실로 향했다.
약종상이었지만 거상이었던 고니시가는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교역과 장사를 돕는 가솔만 해도 오십여명이 넘었다. 문전은 언제나 성시를 이루어 북적였다.
유키나가는 안채로 통하는 쪽마루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 부친이 있는 방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류사는 앉은뱅이 책상앞에 정좌를 하고 있었다. 유키나가의 태도가 평소와 다르게 조금은 무례하게 느껴졌으나, 개의지 않는 듯 했다.
그런 류사 앞에서 유키나가는 머리를 숙여 절을 하는가 싶더니, 자신을 의아한 듯이 바라보는 류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이 품고있는 생각을 말했다.
“아버님, 아무래도 저는 사카이를 벗어야할 것 같습니다."
“왜, 무슨 일이 있었느냐?”
자식을 흘긋 보고는 눈을 내려 다시 출납 장부를 들여보던 류사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리며 물었다. 밑도 끝도없는 갑작스런 유키나가의 말에 놀랄만도 하였지만, 조금도 동요함이 없는 미소 띤 얼굴이었다.
유키나가가 주저하는 빛을 보이자 재차 대답을 촉구했다.
“이 아비에게 떠나야 할 이유를 말해보거라!.”
그는 차남 유키 나가의 재목을 익히 파악하고 있던 터였다. 얼굴에 은은히 떠돌던 미소는 사라졌다. 류사는 정색을 하고는 대답을 기다렸다.
사카이(堺)라는 말은 일본어로 경계 즉 국경이라는 의미이다. 주변의 셋츠 국(摂津国-오사카의 서부), 카와치국(河内国-오사카의 남부)과 이즈미국(和 泉国-오사카의 남부일부)의 삼국과 경계를 접하고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 다. 사카이는 삼국의 경계를 이루며, 바다에 면해 있었다. 당시 수도이던 교 토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왕도와 가깝고 바다에 가깝다는 지리 적인 장점덕에 오래전부터 교역의 중심지가 되어있었다.
일본 전국에 공급되는 모든 교역품이 사카이를 통했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중국의 명과 조선, 그리고 남만국인 필리핀, 캄보디아, 인도 뿐만 아니라 포트투칼 등과도 교역이 활발했다. 교역을 통해 도시는 발전하였고, 경제적으로도 크게 번성해, 많은 부를 창출해냈다. 서양의 총포가 들어와 사카이를 통 해 일본 전토에 보내졌다. 많은 상인들이 부를 축적하였고, 거상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축적된 부를 밑전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해외로까지 넓혀 활동범위를 확장해 나갔다.
신흥 영주들 중에서도, 오다 노부나가와 같은 영주는 사카이의 상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철포를 입수했다. 그리고 그 무기력을 바탕으로 영지를 넓혀 유력 영주로 성장하였던 것이었다.
일본 전토가 신흥 영주들의 등장과 영지 확보라는 명분하에 전쟁과 혼란에 빠져있을 때도, 사카이는 전쟁의 참화에 휩쓸리지 않고, 자유 경제도시로 독 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삼십육인의 거상이 중심이 되어 독립적 이익을 계속 담보하기위해 사카이를 자치도시로 유지하려고 애를 써왔다.
그런데, 오다 노부나가가 등장해 그 세력을 넓히며 일본 전국을 평정해 감에 따라 사카이는 점차 그 자치를 위협받기 시작했다. 이제까지는 각지의 유력 영주들이 힘의 균형을 이루며, 독자적이고 강력한 영주가 나타나질 않아, 사카이의 자치도 크게 위협을 받진 않았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않던 일 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들을 통해 철포를 입수한 노부나가가 세력을 확대시 켜나가면서 “천하포무”의 기치를 내걸고는 일본내 통일을 주창한 것이다. 천하 가 노부나가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들 역시 자치를 인정받을 수 없었다. 노부나가의 등장에 사카이의 부호들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통해 무기를 공급받은 노부나가가 그들의 자치를 위협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만일, 일본 전토가 통일되고 노부나가 같은 절대 군주가 나타난다면 사카이의 자치는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 것이오. 그렇게되면 또한 무기에 대한 수 요가 줄어들 것은 뻔한 일이니, 그만큼 남만, 서양과의 교역은 줄어들 것이외 다. 그렇게 된다면 사카이의 교역도 사양길을 걸을 것이고, 사카이를 지금처럼 유지시키기는 점점 힘들게 될 것이오.”
“사카이의 자치를 위협받는다고 우리가 직접 군비를 마련하여 노부나가와 맞서는 것은 상책은 아니오. 전쟁을 했다가는 오히려 사카이 전체가 초토화 될 위험이 있소.”
“그렇다고 그냥 그대로 있을 수도 없질 않겠오. 아무리 돈이 많다한들, 부 가 곧 무력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니, 이 또한 답답한 일이 아니오.”
“남만과 서양의 여러나라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 놓고, 유사시에 도움을 청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 될 수 있질 않겠소!”
“서양은 너무 멀어 신속을 요하는 유사시에 도움이 될 지 모르겠소?”
“아무튼 갖은 수단을 다 강구해, 독립을 유지해야 할 것이오.”
사키이의 거상들은 많은 부를 지니고 있었지만, 무력을 지니지 못하는 자신들의 무기력함을 깨달았다.
‘스스로 무력을 갖지 못한다면 차선책으로 강력한 다이묘(유력 영주)에 후 원자가 되어, 절대 영주의 출현을 막아야한다. 교묘하게 경쟁체제를 유지시켜 사카이의 독점적 교역권과 자치권을 받아내야 한다.’
이것이 류사를 비롯한 사카이 거상 대부분의 생각이었다.
이와 같은 정세속에서 유키나가의 총명함과 재능을 간파하고 있던 류사는 내심 유키나가가 사무라이의 길을 걷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무예를 익히게 하였다.
“아버님, 오늘도 말을 타고 사카이를 돌아보았습니다만, 저 해자와 방어호 만을 가지고 사카이를 지켜내기는 어렵습니다.”
“호오. 그러면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느냐?”
“오다군은 전국을 무력으로 통일시키고, 천하 지배를 위해 군비를 늘리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노부나가와 사카이가 서로 필요해,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야심가인 노부나가의 칼끝이 사카이를 겨눌 것이라는 것은 천하 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자칫하면 지금까지 쌓아왔던 사카이의 모든 것이 노부나가에 의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호오, 그래?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류사는 아직 어리다고만 느껴왔던 유키나가가 정세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지만, 그 의중을 떠보기 위해 모르는 척, 질문 공세를 폈다.
“저는 사카이를 떠나 비젠(備前-오카야마 남동부)으로 가겠습니다. 비젠으로 가서 우키다(宇喜 多)가의 가신이 되던가, 모리씨(毛利氏)의 가신이 되어 오다군에게 대항하겠습니다. 그것이 사카이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 니다.”
유키나가는 작심한듯이 말을 마치고 얼굴을 쳐들며 부친의 안색을 살피었 다. 류사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올려보는 유키나가를 응시하며, 잠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뚝 선 콧날과 깊게 패인 쌍꺼풀, 그리고 그 위에 먹으로 쓰윽 그려넣은 것 같은 짙은 눈썹이 자신과 닮았음을 느꼈다. 말을 마치고 고집스럽게 굳게 다물고 있는 두툼한 입술을 보면서 말을 꺼댔다.
“결의가 아주 굳은 것 같구나?”
약종상으로 생을 마치게 하기에는 재능이 아까워 어릴 때부터 승마와 검술을 익히게 했다. 또한 병법 외에도 물품관리와 부기 등을 가르쳐왔다. 류사는 자신이 생부이긴하지만, 자신의 바램을 내비추어 그렇게 하도록 자식을 강요하거나 교육시키지 않았다. 류사는 외지에서 들어온 천주교를 받아들일 정도로 유연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지닌 인물이었다. 시대에 필요한 지식과 능력을 익히도록 권장하였지만 간섭은 되도록 적게하고 자식의 뜻을 존중해 왔다.
류사는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유키나가의 앞으로 잘 접어놓은 서간을 꺼 내어 내밀었다.
“내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미리 준비해놓은 것이다. 네 뜻이 그렇다니 당장 이 편지를 지니고 비젠으로가 구로에몽님을 찾아라.”
류사의 행동을 보고 놀란 것은 유키나가였다. 전혀 내색을 하지않고 있던 부친이었다. 오늘 자신의 뜻을 전달할 것인가, 말 것인가? 또 부친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가업을 이어받으라는 불호령이 떨어지진 않을까? 그 얼마나 많은 고심을 하였던가?
부친의 가슴이 얼마가 크고 깊은 지, 그 선견지명에 유키나가는 다시 한번 감복했다.서찰을 건네주며 꼬옥 손을 잡아주는 부친의 손이 유난히도 따뜻하게 느껴졌다.겉봉이 잘 포장된 서간을 두손으로 받아들고는 머리를 바닥에 대고 절을 해, 예를 표했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구로에몽님은 비젠국 영주이신 우키다(宇喜多直家)님 의 측근이다. 우키다님의 신뢰를 받아, 성의 모든 물품 구입을 관장하는 분이다. 부모처럼 섬기고, 모시거라. 그러다 보면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겸손하게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거라. 마음의 준비가 됐다니, 지체하지말고 떠나거라.”
2
사카이에서 비젠국까지는 서쪽 뱃길로 하루 여정의 길이었다. 유키나가는 부친으로부터 건네 받은 서찰을 품속에 곱게 간직하고, 행리 하나만을 등에 짊어진채 비젠국으로 향했다. 언뜻 보면 장사꾼의 차림으로 보였지만,허리 왼쪽에 단단히 동여매어있는 칼이 사무라이 신분임을 알려주었다. 사카이를 떠나는 자신의 발걸음이 가벼움을 느꼈다.
“이제야말로 오랫동안 꿈꾸어 오던 사무라이의 길을 걷게됐다. 내 꼭 입 신양명하고, 성공해 일국을 다스리는 영주가 될 것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와 곧장 사카이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비젠으로 가는 작은 삯배를 탔다. 배는 동풍을 받아 서쪽으로 미끌어지듯 나아갔다. 아와지 (淡路)섬을 지나,세토(瀨戶) 내해(內海)로 흘러 들어갔다.
물자가 풍부하고 활기가 넘치는 사카이와는 달리 서쪽으로 갈 수록 수목이 무성하고 인적이 뜸했다. 배는 세토내해 중간쯤에서 내륙에서 뻗어 나온 강줄기를 따라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곳에서부터는 사공은 돛을 내리고 노를 저어 배를 나아가게 했다. 배는 꾸불꾸불한 강 줄기를 따라 내륙으로 한참을 들어갔다.강의 양안에는 잡초가 무성했다.그렇게 한참을 들어 가더니 사공은 조그만 나룻터 왼쪽에 배를 붙였다.
"여기가 비젠국이오?"
"그렇습니다. 여기부터 비젠국의 영토입니다."
사공은 젊은 유키나가를 흘긋 쳐다보더니 밧줄을 당기며 답을 했 다.이미 해가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초행길인지라, 어둡기 전에 뭍에 닿기를 바랬는데, 예상보다 뱃길에 시간을 많이 지체했던 것이다.
“혹시 성에다 물건을 조달하는 나야 구로에몽님을 아시오."
"이곳에 사는 사람이 나야님을 모르면 이상한 일이지요. 이 앞길을 따라 곧장 가면 성 아래 마을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나야님의 저택을 물으면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거리는 얼마나 되오?”
“그 길을 따라 주욱 가면 아마 한식경도 채 안돼, 도착할 수 있을 겁니 다.”
유키나가는 초행길에 어둠이 밀려오는게 두려웠지만, 한식경도 안걸린다는 사공의 말에 조금 안심을 했다. 배에서 내려 서쪽으로 얼마쯤 걷다가 보니 어둠속에서도 야트막한 산정위에 서있는 누마(沼)성의 모습이 보였다.
‘저곳이 성주가 머무는 누마성이라면 그 아래 마을이 있을 게 틀림없다.’
누마성을 목표로 삼아 유키나가는 발걸음을 더욱 서둘렀다. 과연 짐작대로 성 아래 쪽에 커다란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둠이 깔리기 시작해서인지,성 아래 있는 마을치고는 인적이 드문 편이었다. 유키나가는 등잔을 밝혀 놓은 주막을 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 다시 나야가를 물 었다.
“저 행길 앞쪽에 있는 큰 저택이 바로 그 집이오.”
날이 저물어 그곳에서 하루를 머물고, 다음날 날이 밝고 난 후에 방문을 하 는 것이 예의였지만, 마음이 급했던 유키나가는 곧 바로 나야 구로에몽 (魚屋 九郞右衛門)의 저택을 찾았다.
“쿵쿵쿵. 계십니까?”
흑색으로 검게 칠하여져 육중하게 보이는 대문앞에서, 유키나가는 급한 마음으로 문을 두드렸다. 대문 아래쪽에는 볼록볼록 튀어나온 철판이 덮혀져 있었다. 상당한 재력가나 권력가의 저택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뉘시오?"
문 안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가 나야 어른댁입니까?”
“사카이에서 온 고니시 유키나가라고 합니다. 고니시 류사님의 서찰을 지니 고 왔습니다. 나야 구로에몽님을 직접 뵙고 전해드려야 합니다.”
그때 구로에몽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다다미가 깨끗하게 깔린 거실에서 쉬고있던 중이었는데, 집사가 허리를 숙이며 다가왔다.
“사카이에서 온 고니시가의 청년이 서찰을 지니고 왔다고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오, 그래! 어서 객실로 안내하도록 하라. 그리고 식전이라면 저녁을 대접하도록 하라. 내 직접 객실로 나가볼 테니 채비를 하여라.”
조금 후 집안인데도 불구하고, 주로 외출시에만 걸치는 겉옷까지 걸쳐입은 구로에몽은
귀빈을 맞이하는 듯한 모습으로 집사와 하인들을 대동하고 유키나가가 기다리는 객실로 건너왔다.
집사는 구로에몽의 행동에 조금 의아해했다. 아무리 고니시 류사의 서찰을 지녔다하더라도, 집사를 시켜 거실에서 서찰을 받아 그 내용을 본 후, 집사를 통해 답을 내릴 것인지, 직접 만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서찰을 받아보기는 커녕 내용도 묻지않고, 풋내기 같은 유키나가를 연로한 구로에몽이 직접 찾는 일도 전무후무한 일이거니와, 게다가 실내에서 겉옷까지 걸친다는 것은 귀중한 손님을 대접할 때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구로에몽은 슬하에 아들이 없고 딸을 하나 두었다. 아들이 없던 나야는 사카이를 들락 거리며 오래전부터 고니시가의 유키나가를 눈여겨 보아왔던 터였다. 류사에게 사내 자식이 둘 있다는 것을 알고 차남인 유키나가를 사위겸 양자로 맞아들이고자 오래전부터 유키나가의 생부인 류사에게 말을 전해놓았던 터였다. 그러나 생부 류사도 자신도 유키나가에게 그러한 뜻을 비추거나 강요를 하진 않았다. 그런데, 유키나가가 스스로 찾아들었으니 구로에몽의 기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대로 뛰쳐나와 만나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최소한의 절차를 거치도록 했던 것이었다.
속사정을 모르는 유키나가는 그날 이후로 나야의 저택에 머물게 되었다. 구로에몽은 얼마간 유키나가의 됨됨이를 유심히 살폈다. 본래 유키나가는 매사에 성실했다. 뿐만아니라 사카이의 생부 밑에서 오랫동안 부기를 배워서 잘 이 해하고 있었다. 게다가 선천적으로 총명했다. 구로에몽이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이해했다. 구로에몽은 유키나가의 모든 것이 점점 마음에 들었다. 그로서는 젊은 유키나가의 됨됨이에 매료되었고 친 자식 이상의 정을 느꼈다. 구로에몽은 일체의 물품 구입과 장부 기입, 물품의 식별 등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유키나가에게 전해줬다. 유키나가 역시 한치도 어긋남이 없도록 철저하게 관리를 했다. 모든 일에 빈틈이 없었다.
‘과연 고니시 류사님의 자제로다.’
구로에몽은 유키나가가 자신의 기대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오히려 넘치는 것을 알고는 주저없이 마음을 굳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로에몽은 자신이 해오던 모든 관리를 유키나가에게 맡겼다.
“유키나가, 앞으로 우리 가문의 모든 일은 네가 직접 맡아 관장하고 집행 하도록 하거라.”
그리고 구로에몽은 유키나가를 정식으로 양자겸 사위로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의 재산은 물론, 인맥을 비롯하여, 권리와 직책 등 모든 것을 유키나가에게 넘겼다. 너무도 중요하고, 신뢰를 요하는 일이었기에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맡기지 못했던 성주에 대한 납품마저도 유키나가에게 넘겼다.
"분에 넘치는 신뢰에 그만 황공할 뿐이옵니다.실망하시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장사를 하며 많은 경험을 쌓고, 산전수전을 다 체험한 구로에몽이었다. 지금까지 그의 사람보는 눈은 틀린 적이 별로 없었다. 그는 유키나가가 인간성이 훌륭할 뿐만 아니라,그릇이 큰 인물임을 간파했다.
'충분한 경험을 쌓고 좋은 인맥만 갖는다면,충분히 일국의 성주가 될 인물이다.'
게다가 유키나가는 영민하고 부지런할 뿐만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학 자적 소양도 갖추었다. 무인 같은 체격을 가졌으면서도 성격은 조용한 품성이었다. 항상 서적을 가까이했고, 천주교에 대한 신앙심도 독실했다.
구로에몽을 대신하여 성주에게 납품을 관장하는 책임자가 되어서도,항상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했다. 성을 출입한지 얼마지나지 않아 비젠성의 성주인 우키다가의 가신들 사이에서 유키나가의 사람됨과 그의 행실에 대한 칭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유키나가는 자신이 맡은 직업상 여기저기 행상을 겸한 정보원을 많이 확보하고 있었다. 그가 수집한 정보는 곧 이익을 창출해냈다. 게다가 그는 수집한 정보를 분석해 수시로 성을 출입하며 우키다의 측근들에게 그 정보를 전해주었다. 고급 정보였다.
그에 대한 평판이 측근들 사이에서 높아지자,자연스레 그 소문은 비젠 성의 영주 우키다 나오이에 (宇喜多 直家)의 귀에 들어갔고, 영주도 자신의 성을 들락거리는 유키나가를 눈여겨 보게 되었다.
영주는 유키나가의 물품 관리와 정보수집 능력뿐 아니라,무장으로서도 손색이 없는 근육질의 몸매, 그리고 빈틈없는 태도와 움직임을 유심히 보았다.
'저 정도면 사무라이로서도 손색이 없다.'
영주 우키다는 가끔 뒷뜰에서 무장을 한 채,칼과 활로 병법을 확인하곤 하였다. 그날도 뒷뜰에 있는데 측근 가신으로부터 유키나가가 입성을 했다는 기별이 왔다. 이전 같으면 객실에서 기다리게 했으나, 그날은 우키다가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그렇더냐. 그럼, 이리로 들라하라!”
“주군, 객실이 아니고 이곳으로 직접 말입니까?”
“그래, 내 여기서 몇가지 확인할 일이 있느니라.”
곧 이어 당당한 체구의 유키나가가 뒷 뜰로 안내돼 왔다. 황공스럽다는 듯 허리를 바싹 숙인 채 들어오는 유키나가를 우키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지켜보았다. 그러면서도 모르는 척 왼손으로 활을 쥐어잡고는 화살을 날렸다.뒷뜰로 들어선 유키나가는 활을 쏘고 있는 영주 우키다의 모습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맨 땅위에 무릎을 꿇었다. 우키다의 상체는 반쯤 벗겨져 있었다. 근육질의 상체에서는 차가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김이 하얗게 솟아오르고 있 었다.
“전하, 나야가의 유키나가 대령했사옵니다.”
“오, 내 오늘 확인할 일이 있어 이리 오도록 했다. 일어나 이리 가까이 오도록 하라.”
우키다는 쏘던 활을 옆에 있던 가신에게 넘겨주면서, 유키나가를 맞이했다. 활을 쏘기위해 걷어 붙였던 옷을 내리고는 옆에 세워놓은 목검을 들어 올리며, 유키나가쪽으로 몸을 틀었다.
“예, 무엇이든 분부만 내려주십시오.”
유키나가가 황공하다는 듯이 허리를수그렸다가 영주의 모습을 살피려 고개를 들어올리려 할 때였다.
목검을 들고 있던 우키다가 그대로 유키나가의 정수리를 노리고는 내려쳤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받아라!”
우키다가 내려치는 목검이 정수리를 노리고 들어왔다.
영주앞에 호출을 받아,너무나 황송한 나머지 행동거지 하나 하나에 신경쓰며 조심했던 유키나가였다.
"앗!"
몸을 수그리고 있던 유키나가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며 옆으로 몸을 굴렸다.민첩한 몸놀림이었다.
“휘휭.”
소리를 내며 목검은 위에서 아래로 허공을 갈랐다. 맞았다면 머리가 깨져 성치 못했을 터였다.
“전하! 어째서…”
유키나가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으나 몸은 본능적으로 방어자세를 취했다.
“호오.과연 내 느낌이 틀림없었구나!”
“유키나가! 내 그대의 체격과 근육질을 보고 무예를 익힌 몸이란 걸 익히 알고 있었다. 어디에서 무예를 익혔느냐. 무예를 익혔다면 어디 내 앞에서 솜씨를 보여봐라.”
우키다는 자신이 들고있던 목검을 가신에게 넘기고는,계단위로 올라 대청 에 준비된 의자에 걸터 앉았다.
“유키나가, 거기 있는 몬자에몽이 상대가 되어줄 것이다. 비록 목검이지만 진검으로 여기고 자웅을 겨뤄보도록 하라. 내 이기는 자에게는 포상을 할 것 이니라.”
유키나가의 상대인 몬자에몽은 나이 마흔 중반이었으나,여러 싸움터에서 실전을 경험한 백전노장이었다. 유키나가는 젊고 힘은 있었지만,아직 실전 경험은 없었다.
“몬자에몽! 유키나가에게 한 수 가르쳐 주어라.”
“예, 분부 받아들이겠습니다.”
몬자에몽은 영주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목검을 받아 오른손으로 쥐어잡았다.
우키다는 부하를 시켜 유키나가에게 목검을 주도록 했다. 곧 대련의 형식을 띤 대결이 벌어졌다.
“자, 그럼 한수 부탁드리겠습니다.”
유키나가가 목검을 받아들고 예를 갖추자 마자, 몬자에몽이 틈을 주지않고 공격해 들어왔다.
‘이런 장사꾼쯤이야.’
몬자에몽은 속으로 유키나가를 가볍게 보았다.가능한 한 십합 이내에 승부를 결정짓고 싶었다. 유키나가를 가볍게 제압해 영주에게 자신의 무예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동했다.
“엇차.”
유키나가는 일단 뒷걸음으로 물러서며 몬자에몽을 목검을 쳐냈다. 첫 공격을 피하긴 하였지만, 실전에서 잔뼈가 굵은 백전노장 몬자에몽의 목검 다루는 솜씨는 과연 매서웠다.좌를 치는척 하며 우쪽의 빈틈을 치고 들어 왔다. 위가 비었다 싶으면,곧 바로 목검이 정수리를 향해 내려왔다.
유키나가도 만만치는 않았다. 몬자에몽의 날카로운 공격을 받아내며 상대의 빈틈을 노렸다. 상대가 주춤하면 여지없이 유키나가의 목검이 허공을 가르며 파고 들었다. 처음에는 유키나가를 무시하며 들어오던 몬자에몽도 몇합을 주 고 받으면서,유키나가의 무예와 힘이 보통이 아님을 느꼈다.
그야말로 용호상박이었다. 손에는 목검을 쥐고 있었지만 실전을 방불케하는 대결이었다.지켜보던 우키다와 가신들 모두 마른 침을 삼키고 있었다. 목검에 살기가 서려있기 때문이었다.
'맞으면 중상을 입거나 죽을 수도 있다.'
진검승부와 진배 없었다.
둘은 조금도 양보가 없었다. 수십합을 주고 받았다. 우열이 보이지 않던 둘 사이에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몬자에몽의 입에서 더운 김이 “헉헉”거리 며 피어올랐다. 동시에 몸의 중심 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체가 흔들리면 서 집중력이 약화된 것이었다. 나이의 차이였다. 검술은 극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집중력이 끊어지는 순간, 그 한순간의 흐트러짐이 승부의 고비가 된다. 유키나가는 몬자에몽의 칼끝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그러나 침착한 성격의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좀더 시간을 끌었다. 몬자에몽의 목검이 흐느적거린다 싶을 때,상대의 목검을 쳐내며 허리, 어깨,머리를 연속으로 치며 들어 갔다. 힘에서 밀린 몬자에몽은 유키나가의 목검을 쳐내며 뒤로 물러나다 발이 엉켜 뒤로 넘어졌다. 머리와 어깨가 그대로 노출되었다.
“이얍.”
기합소리가 터져나왔다. 몸에 있는 모든 기를 한데 모은 기합소리였다. 동시에 유키나가의 목검이 상대의 어깨를 노리고 위에서 아래로 사선을 그으며 내려갔다. 몬자에몽의 어깨가 박살나 깨지는가 싶었는데, 목검이 어깨 위에서 멈췄다.
“승부, 결정.”
유키나가의 승리였다. 예기치 않은 기회에 유키나가는 영주인 우키다 앞에 서 유감없이 자신의 무예를 피력하게 된 것이었다. 유키나가는 뒤로 넘어져 있는 몬자에몽에게 다가가, 머리를 숙여 절을 한 후 어깨를 감싸고 함께 일어났다. 둘은 우키다가 앉아있는 대청앞으로 다가가 머리를 숙였다.
“오호, 대단하구나. 움직임보다는 지칠 줄 모르는 힘이 좋아, 힘이.. 와하하 하.몬자에몽 어떤가?”
"주군의 말씀대로 힘이 뛰어났습니다."
우키다는 유키나가가 마음에 들었다. 물품 구매뿐만 아니라 뛰어난 정보 수 집력, 거기다 관리능력을 지니고 있어 성내의 재정을 건실하게 해줄 것으로 보았다. 게다가 사무라이로서도 손색이 없는 무예와 힘을 지니고 있으니 가신으로서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유키나가, 가신으로 임명한다. 앞으로 우키다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 라.”
우키다는 유키나가에게 가신으로 근무할 것을 명령했고, 정보수집과 외교의 모든 것을 일임했다. 사무라이 가문 출신이 아닌 상인 출신으로서, 그것도 타 지역에서 온 유키나가가 영주의 측근이 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극히 보기 드 문 일이었다.
“하아, 전하, 하해와 같은 은혜 황공하옵니다. 유키나가 목숨 바쳐 충성을 다 할 것을 맹세하옵니다.”
파격적인 발탁이었다.
“유키나가님, 영주님에게 인정받을 줄 알았습니다. 같이 일하게 되어 정말 기쁜 마음입니다.”
영리한 사람들은 흔히 자기 도취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자기 착각에 빠져, 겸허함을 결여하기 쉬운 속성을 지니고 있다. 유키나가는 달랐다. 항상 겸손했고, 자신보다 주변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 씀씀이의 소유자였다. 때로는 우직할 정도로 보이는 성실함과 의리, 게다가 따 뜻한 인간성을 지닌 그였다. 그가 장사치 출신이라고 무시하며 가신이 되는 것을 반대하는 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