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시오 2013. 9. 8. 17:35

                                                               현해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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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팔천의 병사를 실은 왜군의선단은 늦봄의 온화한 날씨와 평탄한 파도 덕분에 유시 경(오후6시 전후) 부산포 앞바다에 이르렀다. 하늘에는 아직 해가 많이 남아있었다.

히고지역의 영주 고니시 유키나가가 총대장을 맡고, 대마도와 규슈지역, 그리고도열도의 영주를 중심으로 편성된 왜군 1번대였다. 칠백척의 대선단이 부산포 바로 아래쪽에 있는 절영도 앞바다를 뒤덮자, 바다는 화들짝 놀라 크게 출렁였다.

 전군에게 상륙준비를 하도록 군령을 전하라.”

유키나가의 명령을 받은 부장이 즉시 깃발수에게 명령을 전달하려 할 때였다.

전군이 한꺼번에 상륙하면 위험합니다. 만일 진을 치기도 전에, 조선군이 불시에 기습을 온다면 피할 길이 없어, 그야말로 배수의 진이 되고 맙 니다.”

군사역인 나이토 죠안(內藤 如安)이 유키나가에게 급히 건의를 올렸다. 그는 단바(丹波)지역의 영주였었다. [일본사]를 남긴 포르투칼출신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에 셰례를 받은 크리스천 영주였으나, 전국시대에 노부나가에 영지를 상실했다. 유키나가는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를 중신으로 맞이해, 외교 및 작전을 담당하 는군사역으로 두고 있었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소?”

방어를 위한 싸움이라면 몰라도, 바다 건너 이국에서 배수의 진을 친다는 것은 자멸을 초래할 뿐입니다. 게다가 조선의 왕이 있는 한성까지 가려면 싸움이 것입니다. 병사들의 희생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섣불리 움직였다가 적의 공격을 받게 되면 희생이 나올 수 있습니다.

잘 알겠소.”

유키나가는 즉시 상륙 작전을 변경했다.

츠시마대는 선두로 하선하라. 하선 즉시 척후를 띄워 조선측의 움직임을 살 펴 보고하도록 하라. 안전이 확인된후 전군은 하선한다.

유키나가는 대마도주 요시토시와 각대에령을 띄웠다.

대마도대가 선봉으로 상륙한다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래서 유키나가는 자신을 가장 이해해 사위인 요시토시에게 선봉을 맡긴 것이다. 다른 영주들은 이번 전투에서 어떻해서든지 공훈을 세워 히데요시에게 보여, 출세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자신과 사위는 그들과 생각이 달랐다.

유키나가와 대마도주는 되도록이면 싸움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조선측과 화평이 성립되길 바랬던 것이다. 어쩔 수없이 싸움이 시작되더라도 화평을 위한 교섭을 계속해 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만큼 자신의 생각을 가장 잘 이해해 줄 사람은 오로지 사위 요시토시였다. 그래서 위험하지만 주저없이 선봉상륙을 맡긴 것이었다.

도주 요시토시는 유키나가의 군령을 받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척후대는 선봉으로 하선하라. 상륙 즉시 부산진성으로 향해 조선쪽 동태를 살펴라.

정찰조인 척후를 가장 먼저 내려 보낸 요시토시는 뒤이어 근위대만을 동반 한 채, 소형선인 고하야선으로 옮겨탔다. 소형선이 해안 가까이 접근하자, 근위 병들은 갑옷을 입은 채 바닷물에 뛰어 들어서는 도주가 탄 배를 끌어 모래위로 붙였다.

땅을 고르고 군막을 치도록 하여라.”

"척후대로부터는 아직 연락이 없느냐?"

군막이 세워지고 부대 배치가 끝났는데도, 선발로 띄운 척후대로부터는 연락이 없었다. 요시토시는 초조했다.

일만팔천의 병력이 하선과 상륙을 하려면 상당히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해가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상륙을 해야, 유리하다.”

", 아직 척후로부터 소식이 없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지 않느냐. 척후대가 왜 이리 꾸물대느냐.” 

요시토시는 병사들의 움직임이 맘에 안차는 듯 혼자 중얼거리며 장검을 집어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근위대는 나를 따라라.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군막 밖으로 나섰다.

 장인인 유키나가에게 한시라도 빨리 보고를 하고자 했는데, 척후대가 꾸물대자,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해, 자신이 직접 조선쪽 동태를 살피기 위해 나선 것이었다. 이십대 중반의 혈기가 넘치는 청년 요시토시다웠다.

서쪽하늘에는 마지막 붉은 기운을 바다에 남기며 태양이 비스듬하게 떨어져 갔다.

전하 저쪽을 보십시오.”

측근 부장이 가리키는 절영도 앞바다를 바라보니, 붉은 석양빛이 길게 꼬리 를 내리고 있는 절영도 앞바다가 아군의 병선으로 가득 뒤덮여 있었다.

  ", 과연 대군이로다."

  요시토시는 근위장을 바라보면서, 혼잣말하듯이 중얼거렸다.

부산포 앞바다를 가득 메운 조선 정벌의 선봉대인 제 1번대의 면모는 다음과 같았다.,

총대장, 히고국(,구마모토현 일부)의 영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휘하 병사 7천명. 주요 군사역의 나이토 죠안(內藤如安).

1참모역의 대마도 도주, 소 요시토시(宗 義智), 휘하 병사 5천명. 통 역을 겸한 군사역의 승려 겐소(玄蘇).

큐슈 서쪽 히라토섬 성주 마츠우라(松浦), 휘하 병사 3천명.

시마하라 성주 아리마(有馬), 휘하 병사 2천명.

오무라 성주 오무라(大村), 휘하 병사 1천명.

후쿠에섬(5도열도) 성주,고토 스미하루(五島 純玄), 휘하 병사 700.

도합 18700여명의 대군으로 완전무장을 한 정예였다.

반농반병으로 급작스레 차출된 신참들이 포함돼 있다고 하지만, 이들 왜병의 주력은 이미 일본 국내에서 많은 전투를 경험한 피맛을 아는 병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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