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시오 2013. 9. 5. 12:34

 

 

                                          1

 

저벅, 저벅, 저벅.”

 

츠시마(대마도의 일본명)대는 승선하라. 대열을 유지하라.”

 

어둠이 채가시지 않은 새벽녘이었다. 동편의 해는 아직 떠오를 기미도 보이질 않아, 주위는 어두컴컴했고, 바다는 시커먼 빛을 뿜어냈다.

 

대마도의 오우라 (尾浦)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서쪽 구릉 위에는 갑옷으로 무장을 한 왜장이 착잡한 표정으로 군사들의 승선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선정벌군 제 1대 총대장 고니시 유키나가 (小西 行長), 그가 앉아있는 의자 뒤쪽으로 둥그렇게 장막이 둘러쳐져 있었고, 양옆으로는 허리에 칼을 차고 무장을 한 근위장들이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군막안의 분위기는 삼엄하면서도 무거웠다.

 

지금 승선하는 대열이 츠시마대인가?”

 

,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주군.”

 

무언으로 선착장을 내려다 보던 유키나가의 느닷없는 질문에 옆에 있던 근위장이 황공하다는 표정으로 얼른 확인을 하고는 답을 했다.

 

흐으음.”

 

그의 입에서 신음 비슷한 소리가 새어나오는가 싶더니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휘이익. 파락파락.”

 

새벽 쌀쌀한 바람 듬성듬성 이어 놓은 군막의 빈틈을 파고 들어오는지, 바람소리에 이어 천막이 떨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얼굴에 와닿는 바람은 차가왔다. 새벽 냉기를 애써 외면하듯, 유키나가는 미동도 않고 언덕 아래 선착장을 뚫어지듯 지켜보고 있었다. 왠지모를 비장함에 휩싸인 모습이었다.

 

언덕 아래 선착장앞 평지에 조선 출정의 명령을 받고 대마도에 모여든 병사 일만천이 군선에 올라타느라 분주했다. 병사들은 모두 창과 칼, 철포 등으로 무장을 하고있어 살풍경을 연출했다.

 

승선이 끝나는데로 바로 출항한다. 우리 츠시마대가 선두에 선다.

 

요시토시(宋義智- 요시토시) 부장들에게 선두에 서라는 명령을 내렸다. 대마도의 젊은 도주였다. 선대인 요시시게가 병사하자, 양자였던 그가 약관의 나이에 도주의 자리를 물려받아 대마도를 통치하고 있었다. 조선출병 1 번 대 총대장 유키나가의 사위이기도 했다

 

명일 새벽 조선으로 출정할 것이네.”:

 

조선 출정은 전날 전격적으로 결정되었다. 한달간을 대마도에 머물며 조선 출병을 가늠하던 총대장 유키나가가 결단을 내린 것이다.

 

히데요시(豊臣秀吉-도요토미 히데요시)전하로부터 즉시 출정하라는 명령이 도착해 있네. 이젠 이상 머뭇거릴 없음을 이해하게. 더 이상 꾸물거리다간 우리 모두의 목숨이 성치 못할 것이야.

 

전날 출정을 결정한 유키나가는 사위를 별도로 불러들였다. 유키나가는 다다미 상좌에 앉아 사위 요시토시를 굳은 얼굴로 바라보며, 조선과의 화평 교섭을 이제 그만 체념하라며 명령반 조언반의 말투로 말을 꺼냈. 구절마다 힘이 들어가 말의 매듭이 딱딱 끊어졌다. 말투에 토를 달지말고 따르라는 무언의 강요가 배어있었다.

 

잘 알겠습니다. 장인어른, 그럼 명령에 따라 내일 미명에 출정을 하도록 준비하겠습니다.

 

도주 요시토시도 이상 출정을 저지시키는 것이 무리임을 알았다. 이젠 조선과의 화평을 유지해야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출정을 위해 각오를 새롭게 해야만 했다. 장인의 곤혹스러워하는 얼굴에서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있었다. 그는 말을 아꼈다. 장인의 심기를 어지럽게 같아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그대로 물러 나왔다.

 

요시토시 역시 히데요시의 독촉이 없었다 하더라도 출정을 하지 않으면 지경이었다. 화평교섭을 위해 조선에 파견한 사절로부터는 여전히 아무런 답신이 없었다. 게다가 약 이만에 가까운 군사가 한달여를 대마도에 머물다 보니 양식에서 뿐만 아니라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병사들의 폭행, 약탈, 강간 도민들에 대한 폐혜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부대는 출정준비를 하고 명일 미명까지 오우라항으로 집결하라.

 

유키나가는 사위인 요시토시에게 가장 먼저 출정을 알린 후, 곧 전령을 띄워, 각 부대를 끌고있는 영주들에게 군령을 전달하였다. 군령에 이의를 다는 영주들은 없었다. 그만큼 군령은 엄격했다.

 

"전하. 각대의 영주님들이 군막쪽으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군막안에  앉아있던 유키나가에게 근위장이 다가와 보고를 하였다.

 

따뜻한 차를 준비해 놓아라.”

 

유키나가는 간이 의자에서 일어나 장막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각 부대를 끌고 있는 영주들이 말을 타고 언덕을 올라오는 것이 보였. 승선에 앞서 총대장인 자신에게 예를 표하고자 군막쪽으로 다가오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따뜻한 차를 건네며 유키나가는 격려의 말을 건넸다.

 

“츠시마도주가 앞에 설 것이오. 그 뒤를 따르시오. 쉽지 않은 항해 길이 터인즉 모두들 조심하길 바라오. 무운을 빌겠소.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먼저 승선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차를 나눠 마시고, 서로 예를 표한 오우라항을 향해 내려가는 대의 영주들을 유키나가는 다시 한번 착잡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후우, 결국은 이렇게 되고 것을…,’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애를 썼단 말인가?

 

유키나가는 일본 규수지방 히고( 구마모토지역) 영주였다. 그는 일본 전국을 통일해 천하인이 히데요시(豊臣秀吉-도요토미 히데요시) 측근 심복이었다. 조선정벌 1번대 대장직을 임명받은 것은 한달 전의 일이었다.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하는 수 없이 1번대대장을 맡았으나, 그는 내심, 이번 조선 출정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히데요시를 주군으로 모시며 모든 일에 충성을 다했으나, 이번 조선 출정만큼은 반대편에 서 있었다. 그래서 명령을 받 고 전진기지인 대마도로 들어오긴 했지만, 일기를 핑계로 차일피일하며 출정을 미루어 왔던 것이다.

 

그는 이번 조선 출정은, 히데요시의 지나친 자만과 과욕이 만들어낸 것으로 보고 있었다. 국제사회에 대한 정보력 부재속에서 이루어진 이 출정이 자칫하면 히데요시의 권력 뿐만 아니라, 어쩌면 자신과 사위의 기반마저도 위협할 수 있다고 보았다. 

 

대마도는 오래전부터 조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교역을 독점해왔다. 삼포왜란 뒤에 삼포의 왜관이 폐쇄되고, 교역이 중지돼, 대마도는 재정적으로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왜구를 잡아 바치는 등, 대마도주의 끈질긴 노력으로 인해 교역이 재개돼 이제 겨우 조선측의 신뢰를 회복해가는 상황이었다. 조선조정은 일본지역에서 오직 대마도만을 교역상대로 인정을 했다. 그러나 아직도 삼포 중, 부산포만이 개항된 상태인데다가, 부산포 왜관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었다. 아직 조선측의 완전한 신뢰를 회복하진 못한 상황이었다.

 

만일 히데요시 전하가 조선을 침략한다면, 조선과의 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 입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조선과의 교역을 확대시킨다는 꿈은 더욱 요원해 집니다. 게다가 조선의 뒤에는 명이 있습니다. 히데요시 전하가 조선과 명을 정벌하여 통치한다는 것은 망상에 불과합니다.” 

 

요시토시는 조선과 명을 정벌하여, 자신이 직접 통치한다는 히데요시의 계획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를 누누히 유키나가에게 전했다.

 

선대가 사망하고 새롭게 도주가 된 요시토시는 유키나가의 사위였으며, 같은 천주교도였다. 독실한 천주교도인 유키나가는 천주교 신부들과의 교류를 통해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 정세에도 비교적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조선과 명과는 사위인 요시토시를 통해 히데요시가 모르게 비밀리에 교역을 해왔다. 교역을 통해 얻든 이익은 영지 재정에 충당되었다. 그 덕에 통치가 안정되어 있었다. 즉 조선과의 교역이 영지의 통치를 안정시켜주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사위가 조선통인지라 비교적 다른 영주들보다 조선과 명에 대한 정보가 밝았다.

 

‘주군인 히데요시님이 뛰어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남만(南蠻)은 차치하더라도 조선과 명에 대해 정보도 견식도 없지 않은가. 만일 이번 조선 출정에서 실패하면 히데요시님 뿐만 아니라, 내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

 

주변국의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던 그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히데요시가 조선과 명으로 출정하는 것을 막고자 했다. 사위인 대마도주와 머리를 맞대고 조선과의 화평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궁리를 해왔지만, 여의치 않았다. 조선의 정세에 어두운 히데요시는 막무가내로 조선의 왕이 일본으로 건너와 자신을 알현하라고 독촉했고, 조선 조정은 통신사 파견 이후 유구무언,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어떻해서든지 중간에서 전쟁을 막고 화평을 끌어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희도 같이 무너질 것입니다. 아무튼 전쟁만은 막아야합니다.

 

유키나가는 사위의 의견을 높이 샀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전쟁을 막으려 애를 써왔던 것이다. 조선 조정의 요구로 오도열도에 있던 조선인 반민과 포로들을 모두 송환했다. 그의 끈질긴 노력과 중개 덕분에 그 동안 묵묵부답이었던 조선 조정도 통신사를 파견해왔고, 얼마간의 화평 교섭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통신사가 돌아간 후, 조선 조정은 통신사를 파견한 것으로 모든 외교적 예를 다했으니 더 이상 교섭은 없다는 눈치였다. 통신사 파견으로 조선인 반민과 포로 송환에 대한 빚은 갚았으니, 더 이상 성가시게 하지 말라는 태도였다.

 

 한쪽에서는 말을 안들으면 무력을 동원하여 정벌을 한다는데, 한쪽 당사자인 조선은 태평세월이었다. 유키나가는 오히려 조선측 보다는 자신과 사위의 마음이 더 다급했음을 느꼈다. 그는 사위를 직접 파견해 조선과 외교적인 해결을 요구하는 한편, 전쟁이 일어나면 다 죽을 것이라는 위협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이독경이었다. 말 그대로 조선 조정은 말을 못 알아듣는 황소가  앞발을 버티며 떼를 쓰는, 땅속에 깊히 박힌 돌멩이처럼 움쩍도 하지않았다.

 

“조선에서는 아무런 답이 없는가?

 

“예, 그렇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어허, 이럴수가 위정자들이 벽창호와 조금도 다를 바 없으니, 백성들이 불쌍하구나!

 

유키나가는 조선측이 야속했다.

 

조선과의 외교적 성과를 기다리며 초조해하던 유키나가에게 히데요시의 전령이 처음 나타난 것은 두달 전이었다.

 

조선 통신사가 다녀간 후로, 조금은 유연해진 히데요시였다.

 

“다음은 조선 왕이 직접 건너오도록 하라.

 

“꼭 이행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히데요시의 명을 받은 유키나가는 그렇게 하리라고 대답을 했다. 그러나, 유키나가는 조선왕이 일본으로 건너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임을 잘 알고 있었다. 히데요시의 조선정벌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그렇게 대답한 것이었다.

 

조선왕을 일본으로 건너오게 할 것이라는 유키나가의 말을 믿고 기다리던 히데요시는 아무런 보고가 없자,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다.” 며 조선정벌을 명령했다.

 

임진왜란 발발 여섯달전인 1591년 가을이었다.  

 

히데요시는 조선침략을 결정한 후, 일본 전국의 영주들에게 조선출정 명령을 내렸다.

 

조선 정벌을 위해 현해탄이 내려다 보이는 나고야(名護屋-현 사가현)지역을 전진기지로 삼는다. 그곳에 거성을 축성하라.”

 

이듬해 전진기지인 나고야에 거성이 완성되자 그곳을 본진으로 삼고는 전국에서 이십만의 병력을 모아 집결시켰다.

 

"유키나가. 그대는 출정 군사 칠천을 동원하라!"

 

히데요시가 유키나가에게 내린 명령이었다.

 

히데요시는 전국에 있는 영주들에게 녹봉에 따라 군사 수를 배정했다. 군사 칠천을 끌고 참전하라는 명령을 받은 유키나가는 영지내의 열 다섯 살 이상, 오십 세 이하의 장정들에게 소집명령을 내렸다. 처음에는 열여덟 살 이상 사십 세 이하로 제한을 두었으나, 정상적인 신체를 가진 장정으로 칠천을 긁어모을 수가 없어, 나이 제한의 폭을 넓혔다. 영지내에 열다섯에서 오십세 이하의 큰 병이 없는 남자는 모두 착출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영지에 남은 남자들은 영주가 성을 비운 사이 있을지 모르는 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군사병력과, 신체적 결함을 안고 있는 자들 뿐이었다.

 

히데요시의 추상같은 명에 따라 임진왜란 두달 전인 1592 2월 하순에는 이미 전국의 유력 영주들이 각자의 군대를 끌고, 사가 나고야성 주변에 모여 히데요시의 출정 명령만을 기다렸다.

 

유키나가도, 반 강제로 끌어모은 병사들을 끌고 규슈 북쪽에 있는 나고야로 올라와 산성 남쪽 아래에 주둔을 했다.

 

츠시마에 전령을 띄워라.”

 

출정을 위해 나고야성에 와 있네. 간바쿠전하가 이곳으로 오기 전에 조선측으로 부터 교역을 확대시킨다는 허가를 받아내야 하네. 시간이 없네.”

 

유키나가는 그곳에 있으면서도 화평교섭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대마도에 있는 사위와 수시로 긴밀하게 연락하며 조선과의 교역 확대를 통한 화평 교섭을 위해 애를 썼다.

 

‘조금 더 노력해 조선과의 화평이 성립된다면 군사들이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된다. 만일 이대로 조선에 건너가게 된다면, 많은 사람이 희생될 것은 뻔한 일. 한 사람의 오판으로 죄 없고, 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다면 그처럼 무의미한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어떻해서든지 이번  전쟁을 막아야한다.

 

그는 조선 침략으로 인해 일어날 참사를 충분히 예견했고, 영주로서 뿐만 아니라, 천주교도로서도 그런 불행하고 무고한 일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적으로 종교적으로 싸움을 막으려는 그의 마음은 절실했다.

 

“주군! 간바쿠(關白-히데요시의 벼슬)전하로부터 전령이 와있습니다.

 

전날 대마도에서 돌아온 전령으로부터 ‘조선쪽 움직임 없음.’ 이라는 보고를 받고, 전전긍긍하던 차였는데, 이어서 히데요시가 파견한 전령이 막사로 찾아 왔다는 보고였다. 

 

히데요시는 원래대로라면 정월에 나고야성으로 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여러  사정으로 인해 움직이질 못하고 아직 교토에 남아있었다. 그로서는 여간 다행이 아닐수 없었다. 만일 히데요시가 나고야성으로 오는 날이면 더 이상 전쟁을 지연시키거나 막을 방법은 없기 때문이었다.

 

‘주군이 오기 전에 화평을 끌어내지 못하면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유키나가는 여러 정황으로 보아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체감하고 있었다.

 

시간이 없으니 어서 빨리 화평 교섭을 결과를 끌어내라고 도주에게 전하라.”

 

마음이 급한 나머지 대마도에서 돌아온 전령을 쉬라는 말도 없이 곧바로 돌려 보냈는데, 곧이어 히데요시로부터 전령이 왔다는 보고가 올라온 것이었다. 

 

'이제 어쩌면 좋단 말이냐?'

 

"우선 안으로 안내하라.

 

유키나가는 자신의 군만에서 전령을 기다리면서 갑옷과 군의를 걸쳤다. 간접적으로나마 출정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역시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히데요시가 참다 못해 전령을 보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건 아닌지?.

 

‘혹시 할복 명령이?

 

“후우읍.

 

유키나가는 숨을 크게 들이키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전령은 혼자였다.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불쑥 히데요시의 명령서를 품에서 꺼내 내밀었다. 예를 다 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두손을 위로 올려 서신을 건네받았다. 둘둘 말아진 서신은 묵직했다. 그 끈을 푸는 유키나가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즉시 교토로 올라올 것.

 

묵직했던 촉감과는 달리 서신의 내용은 간단했다. 즉시 교토로 출두하라는 명령뿐이었다.

 

 “무슨 일이오. 간바쿠전하께서 아무런 내용도 적지 않고 단지 교토로 올라오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오?

 

 “글쎄요? 제가 알기로는 교토에서 역정을 내실 만한 특별한 일이 있지는 않습니다. 영주님께서 가보시면 아시게 되겠지요.

 

전령을 통해 히데요시의 심중을 파악하려 했으나, 전령도 입장이 곤란한지 더 이상 묻지 말라는 투로 답을 끊었다. 다만 신속히 움직이는 것이 좋을 것 이라는 눈치는 주었다. 히데요시의 심기가 편치 않다는 의미였다.

 

유키나가는 시종겸 호위 둘만을 데리고 즉시 교토로 올라갔다. 사가에서 교토까지는 이천리 길이었다. 빠른 걸음으로도 보름 이상이 걸리는 길이었다. 조금이라도 히데요시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유키나가의 마음은 급했다. 발걸음은 절로 빨랐다. 히데요시의 말한마디에 목이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히데요시의 측근으로서, 정치는 히데요시’, 문화는 센노 리큐(千利休)’로 평가 받을 정도로, 은은하고 소박한 일본의 차도 문화를 완성시켜 일본에서 차도의 성인이라 칭송받던 인물이 있었다. 그런데 당대의 실력자인 센노 리큐도 조선출병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히데요시에게 할복을 명령받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할복후 리큐의 목은 잘리어 교토에 효수되었었다. 유키나가는 조금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주군, 숙소로 향할까요?”

 

아니다. 꾸물거릴 틈이 없다. 곧장 간바쿠전하의 거성으로 향하도록 하라.”

 

그럼, 분부대로….”

 

유키나가는 교토에 도착한 후, 히데요시의 근황과 속마음을 탐문할 여유도 없이 곧 바로 히데요시의 거성인 쥬라쿠다이성(聚樂第)으로 찾아들어갔다. 평소 같으면 숙소에 먼저 들러 히데요시 측근들에게 연통을 놓아 분위기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준비하는 것이 순서였으나,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히데요시가 자신을 총애하고 있는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변덕이 심했던 터라,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천하인이며 절대 권력자였다. 그의 말 한마디에 누구라도 언제든지 생사가 갈릴 수 있었다.

 

누구냐?”

 

히데요시의 거성인 쥬라쿠다이 입구에 다다르자 경비병들이 길다란 장창을 내밀며 수하를 했다.

 

히고 성주 고시니 유키나가님이다. 간바쿠 전하를 뵈러왔다.”

 

 유키나가의 호위를 맡고있는 도리베가 앞으로 나섰다.

 

잠깐 기다리시오.”

 

천하를 호령하는 히데요시의 거처인지라 경비가 삼엄했다. 조금 지나서, 히데요시의 측근이 성루에서 직접 내려와 유키나가를 맞이했다.

 

유키나가님. 용서하십시오. 불온한 움직임은 없지만, 요즘 전하의 심기가 편치않은지라…’

 

유키나가는 히데요시의 심기가 편치않다는 말에 다시 한번 긴장을 했다.

 

“유키나가님이 대령했사옵니다.

 

화려한 금박으로 장식된 문앞에서 근시는 정중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안쪽을 향해 고했다. 히데요시의 근시가 자신의 도착을 알리는 소리를 들 며, 유키나가는 밖에서 무릎을 꿇고 안쪽의 대답을 기다렸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으나 그에게는 식은 땀이 흐를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 이윽고,

 

  “들여 보내라!

 

근시의 목소리와는 대조적으로 나이 들어 갈라진, 높고 급한 히데요시의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격앙된 목소리였다. 언성이 심상치않았다. 유키나가는 태연한 척하려 하였으나, 저도 모르게 몸이 후들후들 떨림을 느꼈다. 상당히 격노하고 있다는 것을 목소리를 통해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시가 문을 옆으로 당겨 열자, 넓은 다다미 방 안쪽에서 벌떡 일어서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유키나가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방 입구에서부터 허리를 숙여 납짝 엎드렸다. 무릎을 꿇고 기어 들어가 몸을 최대한 낮추어 예를 표했다.

 

“전하! 신 유키나가 분부를 받아 대령했사옵니다.

 

히데요시는 일어선 채로 유키나가에게 다가왔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구나.”

 

그건 그렇고, 조선에서는 아무런 답신이 없느냐?

 

히데요시는 먼길에 수고했다는 치하의 말도 없었다. 다짜고짜로 유키나가를 향해 언성을 높였다.

 

“죄송하옵니다. 전하! 하지만 사절의 보고에 의하면 조선측에서 조만간 곧 사신을 보낼 것이라 하옵니다.

 

“사신? 유키나가! 짐이 지금 사신따위를 기다리고 있다, 생각하는가? 조선 왕을 입조시키랬더니 사신은 다 무어드냐?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 더 이상 기 다릴 수 없으니, 본때를 보여줘라. 지금 즉시 나고야로 돌아가, 군사를 끌고 출정하라.

 

“하아! 전하, 명심하여 분부대로 거행하겠나이다!

 

서슬이 퍼런 히데요시의 모습을 접하고는 유키나가는 더 이상 대꾸를 했다가는 자신의 목숨도 안전치 못할 것으로 보았다.

 

“반드시 조선을 초토화시키고, 조선왕을 사로잡아 전하 앞에 대령하겠습 니다.

 

“그게 내 말이다. 내 그대에게 선봉으로1번대를 맡길테니, 앞장을 서도록 하라. 만일 더 이상 꾸물거렸다가는 먼저 그대의 신상에 화가 미칠 것이다. 그리고 2 번대는 가토 기요마사가 맡을 것이니라. 그러니 나고야로 돌아가는 즉시 출정하라. 머뭇거리지 말고, 지금 당장 돌아가 실행하도록 하라.

 

조선왕을 사로잡아 바친다는 소리에 히데요시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졌음을 느낀 유키나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하의 은혜 황공무지로소이다.  

 

성격이 불같은 히데요시였다. 명령을 거역하거나, 토를 달았다간 그 자리에서 목이 떨어져 나갈 수도 있었다. 되도록 빨리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전하. 그럼, 즉시 출정하기 위해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어서 물러가 조선으로 출정하라. 꾸물대지 말라.”

 

유키나가는 즉시 출정한다는 핑계를 대고 곧바로 히데요시가 있는 쥬라쿠다이 성을 빠져나왔다.

 

휴우, 이쯤으로 끝난 게 다행이다.’

 

히데요시로부터 질책을 받고 나고야로 돌아온 유키나가는 즉시 군사를 수습했다.

 

“지금 즉시 본진을 정리해 츠시마(대마도의 일본명)로 건너간다.

 

그로서는 나고야 역시 안심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전국 각 지역의 영주들이 각자의 군사를 이끌고 여기 저기 주둔하고 있었다. 그 수가 이십만에 달했다. 영주들 중에는 이번 출진을 통해 자신의 군공을 쌓고자 하는 자들도 있었다. 군공을 쌓아 히데요시의 총애를 받게 되면 자신의 영지가 안정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자들은 한시라도 빨리 조선에 건너가고 싶어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또한 히데요시에게 총애를 받고있는 자신을 질투하는 자도 있었다. 그들이 히데요시에게 자신을 모함한다면 언제 할복 명령을 갖고 전령이 달려올지 모를 상황이었다. 무고가 없을지라도 히데요시의 마음이 바뀌면 그 자리에서 참수를 당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로서는 생각만 해도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아무튼 나고야를 벗어나기 전에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었을 뿐더러,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위기를 느끼고 부랴부랴 군사를 이끌고 나고야를 빠져나왔다. 도보로 북쪽으로 올라와서는, 배를 타고 대마도에 도착한 것이 임진년 음력 삼월 초 하루였다. 자신의 영지인 규슈의 히고(肥後)를 떠나온 것이 그 해 정월이었으니, 벌써 석달이 지났던 터였다. 

 

허겁지겁 도망치듯 나고야를 빠져나왔으나, 대마도에 들어서자 조금은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화평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 유키나가는 날씨와 현해탄의 파도를 핑계삼아, 계속 출정을 미루었다. 그런 한편, 사위를 시켜 조 선조정과 교역 재개를 전면적으로 허락하라고 협상을 유도했으나, 조선쪽은 요지부동이었다.

 

음력 사월에 들어서서 다시 그에게 히데요시가 보내온 전령이 대마도로 들어왔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유키나가도 이젠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음을 잘 알았다.

 

그는 전령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명일 일기와 관계없이 출정하리다. 여기 있다가 출정하는 모습을 보고 간바쿠전하에게 그대로 전해 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