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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들과 함께 지낸지 어영부영 한 해가 지났다. 살동은 세월이 흐르면서 이곳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 처음에 이들의 짓이 못마땅하였지만, 점차 이들의 생활과 해적질에 빠져들어 죄의식을 못느끼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태어 나서 처음으로 권력의 맛을 보았다. 조실부모한 후 얼마나 구박을 받으며 천덕꾸러기로 자라왔던가. 먹고 살기위해 죽는 것을 빼고는 다했다. 항상 남의 눈 치를 보고 굽신거려야했다. 어느집에서 식량이나 물건이 없어지면 자신이 한 짓이 아님에도 마을 사람들에게 도둑놈 취급을 받았다. 억울하였지만 대꾸 한번 못하였다. 또 또래 아이들과 싸움이 벌어지면 맞은 놈의 부모가 나타나 그들에게 물매를 맞았다. 보살필 사람 없는 천애 고아인 그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왜구들과 배를 타고나가, 약탈행위를 하면, 사람들은 자신에게 살려 달라고 두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잡혀온 자들도 처소에서 자신을 보면 고개를 숙여 눈을 피했고,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굽실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사람들이 나에게 굽실거리다니.'
왜구들과 함께 있음으로써 살동은 자신에게도 힘, 즉 권력이 생겼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말에 복종하는 사람들을 보며 살동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쾌감을 느꼈다.
'흐음. 아주 재밌는 일이군. 여기야말로 나에게는 낙원이지 않는가?.'
만석과 서봉은 살동과는 달리 그들은 이들의 정체를 알고 나서는 왜구들과 함께 지내는 것에 불만스러워 했다.
“이놈들은 완전히 해적들이네, 그려.”
“긍께, 우리가 왜구의 소굴로 잘못 끌려와 부렀어.”
“걱정할 것 없어. 말만 잘들으믄 죽을 일은 없을팅께. 글고, 우리도 옛날에 포작일 할 때도 식량이 떨어지거나 먹을 것이 없으믄,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강제로 안 뺐었냐? 그것과 마찬가지 아니겄냐.”
살동이 대나무에 실을 꿰 옷을 꿰매다가, 두사람이 주고받는 이야길 듣다가는 말참견을 했다.
“뭐, 직업적으로 한다는 것만 빼믄 새로운 일도 아니제?”
“그거란 이건 틀리제.”
만석이 살동을 쳐다보며 대뜸 그렇지 않다는 듯이 대꾸를 했다. 정색을 하며 얼굴이 굳어졌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죽지않을라믄 못 할 일이 뭐가 있다냐?”
만석이 정색하는 모습을 살동이 흘끗 쳐다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목숨만 살려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의견이 부딪쳤다. 살동은 왜구들의 생활을 이해하려했고, 다른 둘은 이들의 행위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투정을 해댔다. 서로의 생각이 갈린 것이다.
게다가 만석과 서봉은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했다.
“살동아, 우린 고향으로가자, 여그선 못살겠다!”
만석과 서봉은 왜구 생활에 만족해하는 살동에게 조심스레 자신들의 계획을 밝혔다. 움막에 왜인들이 없는 틈을 타, 셋이 조선 말로 이야기를 주고 받던 중에 갑작스레 만석이 고향에 가고싶다는 말을 한 것이었다.
‘아닌 밤중에 웬 홍두깨!’라는 표정을 지으며 살동이 반문을 했다.
“뭔 고향?”
“부모님도 걱정되뿔고, 글고 말이다. 우린 여기서 이짓하고 못살겠구먼. 배만 타고 나가면 맨날 하는 짓이 남의 물건 빼앗고, 죄없는 사람들을 죽이는 짓 이니, 이젠 더 못있겠어야.”
“아따, 배불른 소리하고 자빠졌구만. 너그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나 아냐. 그런 짓 안하면 너그들이 뭘 먹고 살아왔겄냐? 갈라믄 느그들이나 가라. 글고, 너희들은 가족이 있응께 가고도 싶겄지만, 나야 거그 가봤자 아무도 없당께. 그냥 천덕꾸러기일뿐이여. 나는 이곳이 좋네. 옛날처럼 고아라고 따돌림 받을 일도 없고, 일만 생기면 사령들에게 끌려가 죽도록 일하고, 얻어터질 일도 없응께 이곳이 극락이여. 갈라믄 느그들이나 가뿌러.”
“살동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제? 이것이 어디 사람 사는 거냐? 야들은 도둑이고, 살인자여! 이것이 짐승이나 할 일이제, 사람으로 할 일이여? 살동아 그러지 말고 함께 고향으로 가불자! 밥을 굶더라도 사람답게 살아가야제.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랑게!”
“어따, 목구멍이 포도청이여, 나흘만 굶어보라고. 눈에 뵈는 게 있는가? 난 못 할 일 없다. 즈그들도 조선에 있을 때, 먹을 것이 떨어지믄 남의 물건을 훔치고 빼앗았으면서, 거 참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고 있는지, 난 몰겄다.”
“워메, 그때는 허기를 면할라고 그런 것이고, 그거이 어디 사람 죽이는 것 하고 같가니?”
“살동아. 긍께, 바다에 배가 많이 있으니 훔쳐타고 같이 고향으로 가부르자! 너는 바닷길도 잘 알고 그렁께, 우리 같이 가믄 틀림없이 고향에 갈 수 있을 거라고! 노는 야하고 내가 저을테니께, 넌 그냥 물길만 잡아주믄 돼야. ”
만석과 서봉은 번갈아 말을 하며 살동의 마음을 돌리려 애썼다. 탈출하기에는 아무래도 두사람만으로는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난 싫당께. 갈라믄 너그들이나 가랑께.”
살동이 강하게 버티자, 만석이 한발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마치 끌어서라도 같이 가려는 듯이, 앞저고리 밑둥을 잡으며 호소하듯이 말했다.
“살동아,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잔께!”
만석이 자신의 저고리를 잡고 애걸하자, 살동은 만석의 손을 슬쩍 비틀며 뿌리쳤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서 움막을 나가며 조선말로 크게 외쳤다.
“난 죽어도 조선땅으로는 안돌아간당께. 여그서 뼈를 묻을랑께, 갈라믄 느그 들끼리 가고, 내앞에서 그 따위 소리 다시는 하지 말더라고! ”
거적을 걷어 올리며 나가는 살동의 뒷모습을 보던 서봉이 결심을 굳힌 듯 만석을 보며 짤막하게 말했다.
“만석아! 우리끼리 가불자. 저 놈은 이제 더 이상 동무가 아니랑께. 얘라이 썩을 놈. 평생 해적질이나 해 쳐묵어쁘러라.”
“냅둬부러. 저라다가 관원한테 잡히믄 그대로 황천길인께, 제명대로 다 살지도 믓하고 죽을것이 뻔항께!”
그날 밤 만석과 서동은 작은 배를 하나 훔쳐타고 바다로 나갔다.
"무조건, 먼바다로 나가야 돼야."
컴컴해서 방향을 알 수 없었으나, 섬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야겠다는 생각 뿐 이었다. 둘은 죽을 힘을 다해 교대로 노를 저으며, 넓은 먼바다로 방향을 잡아 나갔다.
다음날 아침, 왜구들의 본거지에서는 배 한척이 없어진 것이 발각됐고, 바로 두령에게 보고됐다. 모두 호출을 받아 바닷가로 집합했다. 점호를 하자, 곧 만석과 서봉이 없어졌다는 것이 드러났다.
“저놈을 끌어내라.”
두령은 대뜸 살동을 지목했다.
“네놈은 알고 있으렸다. 솔직히 말하면 살 것이고 거짓을 말하면 목숨을 보전치 못할 것 이다.”
두령 옆에 서있던 소두령들이 달려들어 살동에게 다가와 양팔을 잡았고, 다른 한명은 뒤쪽에서 목을 잡고는 밀었다. 비틀비틀 앞쪽으로 끌려와 무릎을 꿇 고 있는 살동을 보고 두령은 눈꼬리를 치켜 올리며 큰소리로 물었다.
“이실직고하렸다. 두놈이 배를 타고 어디로 갔느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칼을 뽑아 들었다.
칼은 “스르릉”소리를 냈다. 잘 갈려진 칼날이 번쩍였다.
‘잘못하면 개죽음을 당한다.’
순간적으로 목이 서늘해졌다. 살동은 동무들을 감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사실대로 고했다. 그래야만 자신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예, 어제 같이 도망치자고 저에게 왔었습니다. 제가 거절하니 둘이서 밤사 이에 도망을 친 것 같습니다.”
“어디로 간다고 했느냐? “
“고향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네놈은 왜 안갔느냐?”
“저는 이곳이 좋습니다. 고향보다 이곳의 삶이 더 좋습니다.”
두령의 질문에 지체없이 바로바로 있는 그대로 대답을 했다. 목소리가 덜덜 떨릴 정도로 분위기가 살벌했다. 조금이라도 주저해 두령의 의심을 받았다간, 바로 그자리에서 목이 떨어질 것 같았다.
'이대로 죽을 순없다. 동무들을 팔아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살동의 마음은 간절했다.
“신사부로! 네놈도 책임이 크다. 같이 움막에 살면서 낌새도 못차리다니... 곧 요시로와 함께 배 세척과 스무명을 끌고 나가, 그 놈들을 잡아오너라. 아니다. 여기가 싫어서 떠난 놈들 잡아올 필요도 없다. 목만 베어오고, 시신은 고깃 밥이 되도록 물속에 쳐넣도록 해라.”
살동은 움막으로 돌아가는 것이 허락됐으나, 감시가 붙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 신사부로와 배 네척이 돌아왔다. 만석과 서봉이 타고 나갔던 배는 다른 배에 매달려 빈배로 돌아왔다. 배위의 돛기둥에는 그들의 수급이 새끼줄에 엮여 매달려 있었다.
‘바보 같은 놈들! 억지로 살아남았는데, 뭐가 좋다고 다시 조선으로 간다고 난리를 쳐서, 결국 물고기 밥이 되었더냐.’
“사르동, 너도 앞으로 조심해야한다. 조금이라도 딴 마음을 먹었다가는 그 대로 황천행이야.”
살동의 감시역인 신사부로가 살동에게 충고했다.
“알고있어. 난 절대 그런 일 없을거야."
살동은 그렇게 혼자 남아 왜구들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철저하게 왜구로 변해갔다. 약탈을 위해 출항을 하면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의심받고 싶지 않아 그러하기도 했으나, 그에겐 이젠 죄의식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자, 다른 왜구들도 이제 더 이상 살동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지 않았다.
“사르동, 내일 출항한단다. 준비해라.”
머리에 동물의 뼈를 박아 넣은 투구를 뒤집어 쓴 신사부로가 움막 입구에 걸려있는 거적을 들어 올리며 안으로 들어오며, 살동을 보고는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그래, 이번에는 또 어디로 가려나?”
살동은 신사부로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는 벌떡 일어나며 왜말로 물었다. 자신과 나이도 비슷하고 지위에서도 큰 차이가 없었지만 신사부로를 보면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아마도 신사부로가 자신보다 고참이라 그러리라 했지만, 꼭 그것만은 아니었다. 이방인으로서 갖는 열등감이었다.
그래서 살동은 모든 일에 적극적이었다. 왜말도 더욱 열심히 익혔고, 주눅 들지 않으려고 남들보다 더 솔선해서 움직였다. 약탈을 할 때도 왜구들 못지 않게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 왜구들 마저 혀를 내두르며 잔인하다 할 정도로 악랄하게 굴었다.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신사부로가 싱긋 웃으며 살동의 물음에 답을 했다.
“조선으로 간단다. 이번에 네가 큰 활약을 해야겠다.”
“뭐! 조선에….?”
“이번에 너 때문에 우리 배가 가장 앞장 설 것이다. 네가 지리를 잘 아니, 우리가 탄 배가 선두에 설 것이다. 그렇게 되면 좋은 건 우리가 먼저 차지할 수 있다고 …하하하.”
살동은 고향에 간다는 말을 듣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당황하면서도 마음 한쪽 귀퉁이에선 설렘도 일었다.
‘내 이번에 가면 잘난체 하던 양반놈들에게 쓴 맛을 보여주지.’
그러면서도 머릿속은 복잡하고 마음은 착잡해졌다. 금의환양도 아니고, 왜구의 일당이 되어 약탈을 하러 간다는 게 꺼림칙했다.
‘같이 배를 탔던 동료 가족들에게는 뭐라 설명하나? 다 죽고 나만 살아 남았 다면 믿어줄 것인가?’
그다지 미련이 많은 고향땅은 아니지만 고향땅을 침범한다는 것과, 같이 배를 타고 전복을 따러갔다가, 다 죽고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것, 그리고 약 탈이 시작되면 죄없는 양민들까지 다칠 수 있다는게 마음에 걸렸다.
살동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출정을 위해 짐을 꾸리다가, 짐속에 있는 칼을 뽑아 들었다. 날카롭게 잘 벼르어진 칼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는 손에 힘을 꾹 주었다.
‘아무튼 양민들이 안다치게 하고, 양반놈들과 그에 빌붙어 선한 백성들을 등 치는 놈들을 찾아 본 때를 보여주자.’
‘양민의 고혈을 빨아 살이 디룩디룩 찐 너희 양반들의 배를 내 이칼로 도륙 내주리라.’
다음날 해가 뜨자, 살동이 탄 배가 앞장서, 왜구의 선단을 끌었다. 살동은 당초에는 왜구들을 끌고 지리를 잘 아는 진도쪽으로 가려했다. 그런데 서풍이 거셌다. 바람에 밀리자, 살동은 방향을 틀어 완도의 가리포(加里浦)로 향했다. 그런데 그곳 바다도 해풍이 워낙 강해 여의치않았다. 살동은 하는 수 없이 왜구들을 이끌고 흥양 (興陽-현 고흥반도)으로 상륙했다.
흥양에 도착한 살동일행은 해안을 한차례 유린하고나서 손죽도로 물러나 그곳을 거점으로 해, 주변 지역을 약탈했다. 손죽도는 고흥반도 남쪽에 위치한 섬이었다.
이때가 왜란 발발 다섯해 전이니, 1587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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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조선 조정에서는 남쪽 해안에 왜구가 자주 출몰하자 흥양 남쪽에 녹도진을 설치했고, 각 진에는 종사품인 만호를 파견해 해안을 경계하고 있었다. 당시 녹도진 만호는 이대원(李大原)이 맡고 있었는데, 그는 십대 후반에 무과에 급제하여, 스물을 갓 넘은 젊은 나이에 종사품이 된 인물이었다. 병장기를 잘 다루었고, 힘이 좋아 기개가 넘쳤다.
이미 이대원은 왜구들과 한차례 접전을 펼치고 난 후였다.
살동이 이끈 왜구들이 남쪽 해안에 침범해 흥양(興陽)을 유린하자, 녹도진에 있던 이대원은 상관인 좌수사에게 장계를 올리는 한편, 신속하게 수하 군사를 이끌고 왜구를 기습 공격했다. 약탈에 정신을 빼앗겨 방심하고 있던 왜구들은 조선군의 신속한 출몰에 놀랐고, 동시에 순식간에 접전이 벌어지자 당황하였다. 당황한 왜구들은 조선군의 전력을 알 수가 없어, 일단 후퇴를 했다. 왜구들은 약간의 희생자를 내었으나, 움직임이 빠른 그들은 조선군을 따돌리고, 그대로 배를 몰고 바다로 나와 육지와 멀리 떨어진 손죽도에 머물며 유유히 남해안 지방을 유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기습공격에 성공한 이대원은 왜구가 남쪽바다로 물러가자, 전공으로 거둔 왜구의 수급 다섯개를 궤짝에 넣어 진으로 귀환했다. 그리고 왜구를 격퇴했다는 내용을 장계에 적어 수급과 함께 수사에게 올렸던 터였다.
“왜구들이 해안을 유린하고 있다는 급한 보고가 있어, 수하 병사들로 이를 퇴치했습니다. 그 증거로 여기 다섯개의 왜구의 수급을 올립니다.”
장계를 올린 이대원은 또 있을지 모를 전투를 위해 진에서 군사와 병장기를 점검하며, 내심 부사나 조정에서 내려올 논공행상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때 수사의 명을 받은 군관이 병졸 둘을 좌우에 거느리고 진으로 넘어왔다.
“만호나리, 좌수사께서 군령을 내려서, 이렇게 전달 왔습니다.”
“그렇잖아도 궁금하던 차였는데, 조정에서 연락이 왔던가?”
이대원은 군관으로부터 둘둘 말아진 서찰을 건네 받아 주욱 폈다.
‘만호는 지금 즉시 군사를 모아 수사청으로 넘어와, 대령하라! ’
부름을 받은 대원은 관복으로 갈아 입고, 부하들을 모아 즉시 좌수영을 찾았다.
좌수사 심암(沈巖)은 ‘염불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많은 출세지향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좌수사 벼슬에 만족하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공을 세워 조 정이 있는 한성에 올라가고픈 마음뿐이었다. 그는 지방에 있으면서도 조정의 끈을 통해 시시때때로 뇌물을 진상했다. 자신이 약을 써놓은 뇌물이 이제 곧 벼슬이 되어 돌아온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이제 조그마한 공만 쌓으면 한성으로 올라가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다.’
그러던 차에 이대원이 공을 세웠다는 장계를 받았던 것이다. 심암은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이 젊은 놈의 공을 내것으로 할 수만 있다면…’
원래대로라면 좌수사인 그는 즉시 자신의 수하인 만호가 세운 공을 장계에 적어 조정에 올려야 했다.
그러나 이대원의 공이 탐이난 그는 조정에 장계를 올리지 않았다. 이대원의 공을 빼앗고 싶은 마음이 앞섰던 것이었다. 조그만한 공이라도 있으면, 뇌물이 효력을 발휘해, 바로 이 지긋지긋한 촌구석을 벗어나 한성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한성으로 올라만 간다면 나의 인맥과 뇌물을 통해, 조정에서 정승판서 한자리 차지하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다.'
꿍꿍이 속셈이 있는 그는 부하의 공에 대해 장계를 올리는 일 보다, 그것을 빼았을 생각이 앞섰던 것이었다. 그러던 차에,
‘흥양에서 물러난 왜구들이 손죽도에 진을 치고 남해의 백성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수군으로부터 장계가 올라왔다.
'옳지, 잘됐다.'
즉시 이대원을 불러오도록 했던 것이다.
“만호! 왜구를 소탕하였다더니 도대체 이 장계는 무엇이란 말인가?”
“무슨 말씀이신지요? 수사 영감.”
“어허, 여기 수군이 올린 장계가 있소. 왜구가 손죽도에 주둔하고 있다지 않는가?”
심암은 먹물이 묻어있는 종이를 펼쳐 위아래로 흔들며, 고함을 치며 이대원을 추궁했다.
“이를 놔두었다간, 지난번 공은 다 허사가 되오. 어서 빨리 출정해 왜구를 소 탕하시오. 군령이오.”
속셈이 따로있는 군령이라는 말에 꾸욱 힘을 주었다.
"알겠습니다. 수사 영감. 군사가 부족하니 수영의 군사를 내주십시오."
심암은 수하 군사 오십여명 만을 내주었다. 이대원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거느린 녹도진 군사 오십여명을 합쳐봤자, 약 백여명의 군사였다. 이대원은 주어진 군사만으로 바다에서 왜구를 소탕하기 어렵다고 느꼈던 탓에 그 자리에서 충원을 요구했다.
“왜구의 수가 많습니다. 지난번 싸움은 기습을 했기에 적은 수로도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번에는 바다로 나가서 싸워야됩니다. 군사 수가 부족합니다. 최소한 두배는 있어야 승산이 있습니다. ”
장부상 군사수는 제외하더라도 실제 좌수영의 군사수만 해도 일천명이 넘는 것을 알고 있는 터였다. 그러자, 심암은 자리에서 일어나 웃음을 띄우며 이대원을 달랬다.
‘만호는 아무 걱정마오. 선발대로 먼저 나가 왜구를 찾기만 하오. 만일 왜구와 전투가 벌어지면, 그때는 좌수사인 내가 군영의 군사를 모두 이끌고 나아 갈 것이오. 만호와 내가 힘을 합해 포위를 한다면 왜구를 완전히 일망타진 할 수 있을 것이오. 그러니 나만 믿고 아무 걱정마오.”
군율이 엄격했다. 상관의 명령을 무시했다가는 그대로 항명죄로 처리될 것이고, 임금앞으로 장계가 올라갈 것이다. 이대원은 심암의 말이 미심쩍었으나,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럼, 수사나리를 믿고 나가겠소이다. 왜구를 발견하는 즉시 전령을 보내겠습니다. 원병을 부탁드립니다. "
만호 이대원은 하는 수 없이 백여 명의 수군만을 끌고 손죽도로 향했다.
왜구들은 조선수군을 보자, 기다렸다는 듯이 배를 몰고 바다로 나왔다. 왜구들 중 일부는 철포를 소유하고 있었다. 손죽도로 물러난 왜구들은 조선군의 기습 공격에 사상자를 내고 후퇴를 하긴 했지만, 원래 조선군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았다.
바다에 익숙한 왜구들에게 이대원이 이끄는 조선군은 일방적으로 밀렸다. 왜구들은 배를 잘 탔고, 민첩했다. 왜구들은 자신들의 배를 조선 군선 가까이로 붙이고는 마치 제집 드나들듯이 올라탔다. 왜구들은 바다위에서도 뭍에서 처럼 움직였다. 조선군이 바다에서 기었다면, 왜구들은 날았다. 게다가 왜구가 철포를 방포하면 조선군은 머리를 숙이기 바빴고, 왜구들이 날카로운 칼을 휘두르며 공격해오면, 조선군은 싸울 생각은 하지않고, 병장기를 손에서 놓아버렸다. 그리고 무력하게 항복을 했다.
“싸워라. 항복하지마라.”
만호 이대원만 고군분투했다. 전령을 띄웠으나 곧 원군을 보내준다던 수사 심암은 나타나지 않았다. 병사들이 왜구들에게 밀리며 하나 둘 쓰러져갈 때 이 대원은 악으로 버티며 원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좌수영쪽에서 나오는 군선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심암의 계책이었다. 처음부터 이대원을 사지로 몰아넣고, 그의 공적을 빼앗으려고 획책하였던 것이었다. 결국 이대원이 이끄는 조선군은 왜구에게 포위 공격을 받아 많은 사상자를 낸 후, 꼼짝 못하고 많은 수가 포로 로 잡혔다. 이대원도 포로로 잡혔다. 왜구들은 조선군 포로들을 손죽도로 끌 고 갔다.
“항복하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마.”
“가소로운 놈들. 네 비록 죽지못하고 포로가 되긴 하였으나, 왜구들에게 목숨을 구걸할 정도로 비루하진 않다. 더이상 욕을 보이지말고, 무인답게 목을 베라.”
이대원은 항복을 권유하는 왜구에게 끝까지 저항했다.
“목을 베라.”
이대원의 기개를 높이사 자신의 무리로 끌어들이려던 왜구의 두령은 뜻을 접고 그의 목을 베도록 하였다.
다음은 실록에 기록되어있는 기술이다.
‘처음 적선 두어척이 녹도를 침범하였다. 만호 이대원이 창졸간에 통보할 여가가 없어 혼자서 왜적을 잡았다. 좌수사 심암이 깊이 미워하였다가 이때 적선이 또 죽도를 침범하니 대원으로 척후를 삼아 싸우게 하고 자기는 수군을 거느리고 관망만 하다가 물러오고 후원하지 않았다. 대원을 고립된 군사로 싸우다가 죽게하고, 심암은 스스로 군률를 어긴 것을 알고 적세가 대단하다고 거짓으로 아뢰어 내지의 군사까지 징발시켰다. 우참찬 김명원(金命元)을 도순 무사로 삼아 녹도를 침범한 적을 치게 하였더니 적은 이미 물러간 뒤었다. 좌수사 심암(沈巖)은 군률을 어겼으므로 잡아다가 효시하였다.’
손죽도에서 만호 이대원을 참살하고, 그 휘하 수군과 손죽도 양민을 포로로 잡은 왜구들은 자신들의 본거지인 후쿠에 섬으로 물러갔다. 양민들은 끌려가는 배위에서 눈물을 흘리며 통곡을 했다. 군사들은 그래도 의연한 편이었다.
살동은 이들을 애써 외면하려 하였지만 자신도 모르게 연민의 정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왜구들이 이들을 심하게 닥달하면 나서서 통역을 하며, 왜구들을 달랬다.
'인지상정인가?'
그는 양민으로 포로가 된 사람들이 가엾게 느껴졌다.
“두려워할 것 없소. 나는 옥주(진도)사람이오. 전복을 따러 배를 타고 나 섰다가 풍랑을 만나 이곳에 표착하였소. 처음에는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이곳이 조선보다 편해 이곳에 남아있는 것이오. 조선에 있을 땐 우리같은 상놈 들에게 하도 부역을 많이 시켜 삶이 힘들고 고되었소. 또 때마다 탐관오리들이 조(租)다 역(役)이다, 공납(貢納)이다 하여 많은 수탈을 당했소. 이곳은 그런 거 없소. 시키는대로 말만 잘 듣는다면 여기 사는 것이 조선에서 사는 삶보다 훨 씬 나을 수도 있소. 그리 아는게 마음 편할 것이오.”
본거지인 후쿠에섬에 도착한 왜구들은 즉시 포로들을 분별했다. 예쁘고 젊은 여자들은 노리개로 삼았고, 나이 든 아낙들은 잡일을 거들도록 하였다. 그리고 건장한 장정들과 군사들은 교역선에 싣고 나가사키 근처의 노예 시장으로 끌고가 노예로 팔아넘겼다.
전라좌수영 소속이던 김개동(金介同)과 이언세(李彦世)도 포로로 잡혀왔다. 그들은 곧 다른 포로들과 함꼐 당시 노예시장이 상설되었던 나가사키로 끌려가 노예로 팔렸다. 이들을 사들인 사람은 중국사람이었다. 그들은 곧 배에 실려 중국 남쪽 광서(廣西)지방으로 끌려갔다. 졸지에 무역상의 노예가 된 두 사람은 주로 짐을 나르는 등 짐꾼이 되었다. 변변치 못한 식거리가 제공되었고, 밤에는 창고에 갇혀 집단 생활을 강요당했다. 말이 통하질 않아 도무지 답답했다. 대개는 창고에 갇혀 있다가, 짐을 나를 일이 있으면 소집되어 배가 출항하기 전에 창고에 있는 교역품을 바다에 있는 배로 실어 나르는 일을 했 다.
“이보게 여기는 명나라인 것 같네!”
하루는 배에 실으려고 짐을 지고 나갔던 이언세가 돌아와서는 개동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는 천자문을 깨쳐 조금은 글을 아는 사람이었다.
“한문이 여기 저기 쓰인 걸 보니 명나라가 틀림없네!”
“그럼, 이곳 주인에게 우리가 조선출신이라는 걸 알리면 고향에 돌아갈 수 있겠구먼요.”
“근데, 그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네. 이곳 주인이 돈을 주고 우리를 노예로 사들였으니, 절대 공짜로 우릴 놓아줄리 없네.”
“그럼, 어떻하면 좋은가요?”
“먼저, 기회를 봐 이집을 빠져나가야 하네. 그리고 관청에 가, 우리가 조선의 군사출신이란 걸 알린다면 뭔가 방법이 있을 거네.”
“그럼, 그렇게 해야죠!”
둘은 도망갈 궁리를 한 끝에, 우선 감시를 느슨하게 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는 척 하였다. 감독관도 그들이 꾀부리지 않고 고분고분 일을 잘하자, 다른 노예들과는 달리 부드럽게 대해 왔다. 그날도 창고에 있는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감독관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짐이 많으니 모두들 나와 짐을 싣고 선창으로 간다. 꾀를 부리는 놈은 경을 칠줄 알아라.”
두사람은 감독관이 중국말로 뭐라 떠드는 것을 듣긴 하였지만 뭔 소린지는 몰랐다. 그냥 눈치로 이해했고, 다른 사람들을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두사람은 솔선하여 남들보다 많은 짐을 등에 지고 창고 문을 나섰다. 창고 밖 에는 중국인 감독이 채찍을 들고 서있다가, 남보다 많은 짐을 지고 창고 문을 나오는 이언세와 김개동을 쳐다보고는 만족스러운 듯이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뭐라 했다.
아마 '조심하라.'는 뜻일 거라 이해했다. 배에 짐을 다 부리고, 돌아오는 길 에 두 사람은 감독의 눈을 속여 짐꾼들의 열을 이탈했다. 자신들이 도망친 것 을 알면 곧 추격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에 잡히기 전에 관청을 찾아야 했다. 그 런데 도대체 말도 안통하고 넓은 사방에서 관청을 찾는 일은 그렇게 쉽지가 않았다.
"우선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시장을 찾아가세."
이언세는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저자거리 근처에 가면 거기서 관청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짐이나 생필품을 막대 양쪽에 바구니에 걸쳐 매고 다니는 사람들이 상인이라는 것을 눈치채고는, 몰래 그들을 따라붙었다. 시장을 찾았을 때, 만두를 가게앞에 수북히 놓고 파는 상점앞으로 다가갔다. 그들을 맞이해 상인은 중국말로 뭐라 쏼라쏼라 했으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이언세는 얼른 땅바닥에 떨어져있는 나뭇가지를 손으로 줏어들고는 바닥에 한자로 썼다.
‘관청(官廳)’
이언세의 행동을 보고 가게 앞으로 나온 중국 상인은 땅의 쓰여진 글을 보고, 잠시 그들을 위 아래로 쳐다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김개동이 두손을 모아 싹싹 비는 시늉을 하자, 그제사 상인은 손으로 시장 반대쪽을 비스듬하게 가리켰다.
“쉐쉐(감사)”
중국말로 고맙다는 답을 하고는, 둘은 시장입구를 돌아 나와 담이 높게 둘러 쳐져 있는 곳을 찾아 냈다.
“저기가 관청이 틀림없네. 문이 어딘지 찾아보세.”
담을 따라 뒤로 돌아가니, 관원인듯 한 자가 벙거지 비슷한 모자를 쓰고 쇠 판을 덧 댄 커다란 문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둘은 허겁지겁 관청문을 향해 뛰어갔다. 그러자 문지기는 허름한 모습을 하고 다가오는 그들을 보더니 창을 세워 막아섰다.
“쉐쉐, 워 스….”
중국말을 모르니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문지기는 웬 거지들이 관청앞에서 어슬렁거리는가, 귀찮은듯이 그들을 멀리 쫒아내려고 들고 있던 창으로 찌르 는 시늉을 했다. 겁을 주기위한 위협적 동작이었다.
급해진 이언세는 다시 막대를 하나 주어들고 흙위에다 한문을 썼다.
‘吾等是朝鮮人. (우리는 조선사람이다.)’
가까이 다가와 흙위를 쳐다보던 문지기는 문자를 알지 못하는지 어리둥절해 있다가, 그들을 흘끔 쳐다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가는 누군가와 함께 나왔 다. 문지기의 복장과는 차림새가 다른 자였다. 윗옷에는 장식이 달린 비단옷을 걸치고 있어, 한눈에도 지위가 있는 관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조선인이오. 왜놈들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이곳까지 팔려왔소.”
이언세는 다급한 마음에 관원을 보고 조선말로 자신들의 처지를 전하려 애를 썼다. 그러나 관원 역시 조선말을 알지는 못했다.
“이놈들은 오랑캐들 아니냐?”
관원이 중국말로 문지기를 타박했다. 그러자 문지기는 당황해서 손으로 이언세가 흙바닥 위에 써놓은 한문을 가리켰다. 흙위에 쓰여진 한자는 조금 희미 해지긴 하였으나, 의미를 이해하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관원은 글을 본 후, 다시 두 사람의 위아래를 한번 쑥 훑어 보고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조금 후 다시 나온 그의 손에는 지필묵이 들려져 있었다.
이언세는 지필묵을 받아 들고서는, 땅바닥에 앉아, 자신의 한자 지식을 최대한 살려, 한자로 문장을 만들어가며 글을 지어냈다.
‘저희는 조선사람으로, 전라좌수영에 속해 있는 수군입니다. 왜구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이곳으로 팔려왔습니다. 조선은 명국의 신하국입니다. 조선으로 돌려 보내주시면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결초보은 하겠습니다.
이언세의 글은 이곳 지방관인 도사(都司)에게 올라갔다. 도사는 이언세가 올린 문장을 보고 이들이 조선사람이 틀림없다고 보았다. 조선 사람들이 중국 글을 잘 안다는 것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고, 명나라와 조선국의 관계가 서술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또 오랑캐라면 한문을 알리가 없다는 것이 도사의 판단이었다. 도사는 곧 보고서와 함께 관원을 시켜 이들을 북경으로 호송하도록 조치했다.
중국 남서부에 있는 광서에서 북경까지는 수천리 거리였다. 두사람은 관원들의 호송을 받으면서 한달 이상을 거쳐 북경에 도착했다. 북경의 관청으로 넘 겨진 두사람은 그곳에서 다시 심문을 받았다. 지방관인 도사가 올린 보고서를 근거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으나, 심문은 필담으로 엄격하게 이루어졌다.
이언세는 어린시절 어깨 너머로 천자문을 배웠지만, 본격적으로 과거를 준비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한자 능력은 천자문 정도였다. 과거를 위해 사서 삼경을 통달하였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천자문 정도로 자신의 입장을 전달하 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언세는 자신의 한자 능력이 한문 문장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문장을 작성할 정도가 못 되는 것을 알고 답답해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문 공부를 좀 더 해놓을 것을..”
그는 이번 심문이 자신들의 목숨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중국말을 못 알아듣는 그는 중국 관원들의 심문에 필담을 통해 필사적으로 자신의 신분 과 지금까지의 경위를 설명했다.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이대로 객지에서 죽을 형편이었다.
중국 관원들이 그의 한문을 보고 의아해 하는 표정을 짓자, 이언세는 곰곰히 생각한 끝에 중국 관원에게 옥편을 요구했다. 섣불리 한자를 쓰는 것 보다는 옥편을 보며 자신이 아는 한자를 최대한 이용해, 문장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침착해야한다. 말한마디 글 한줄이 목숨을 좌우한다.'
이언세는 신중하게 중국 관원들의 심문에 정성을 다해 필담으로 답을 했다. 자신들이 조선의 관원이라는 것과 왜구에게 끌려갔다가 노예로 팔려, 명으로 오게 된 경위를 문장으로 되도록 알기쉽게 담아냈다. 명의 관원들은 이언세가 쓴 한문을 받아들고 사정을 이해하는 데 얼마간의 시간이 걸렸다. 문장이 어색하여 상세한 내용까지는 어려웠지만, 문맥을 통해 대강의 경위와 중요한 부분은 전달이 됐다. 처음에는 엄격한 심문형식을 취했던 중국 관원들도 이언세가 적어내는 글의 내용을 보고는 뜻이 전달됐는지 조금씩 시선과 말투가 부드럽게 바뀌어갔다.
이언세의 필사적 노력 끝에, 두사람은 명의 조정으로부터 조선 관원의 신분이라는 것을 인정받았다. 이언세는 너무도 감개무량했다.
왜구와의 전투에서 대장은 전사하고, 자신들은 포로가 되어 왜국에 끌려가 노예로 팔린 일, 게다가 중국에까지 끌려와 중노동을 하다가, 부두에서 목숨을 걸고 도망쳐 나와 여기까지 이르렀던 일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개동이, 이젠 고향에 갈 수 있을 것 같네!”
“너무 잘 됐습니다. 여하튼 너무 수고했습니다.”
개동은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쁨에 저도 모르게 이언세의 두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다. 명조정은 그들을 한동안 북경에 머무르게 했고, 이들은 이듬해 조선에서 오는 사행인 사은사 유전을 따라 조선으로 돌아왔다.
사행들과 함께 조선으로 돌아온 이언세와 김개동은 다시 의금부에서 심문을 받았다. 심문 결과 한해 전 손죽도에서 포로가 되어 오도열도로 끌려간 좌수영 군사라는 것이 밝혀졌다.
“쇤네들이 왜나라 섬에 끌려갔을 때 안 사실이지만, 그 곳에는 살동이라는 이름을 쓰는 조선민이 있었습니다. 손죽도에 왜구를 끌고온 것도 그 살동이라는 놈의 소행인 걸로 들었습니다. 왜구와 한패가 된 조선 백성이었습니다.”
“뭣이라고? 조선 백성이 왜구들을 끌고 들어와 그 분란을 일으켰단 말이더 냐? 그렇다면 반민이 아니더냐. 틀림없는 사실이렸다?.”
“저희가 왜구의 소굴로 끌려갔을 때, 그 살동인가 뭔가 하는 놈이 우리에게 조선말로 자신은 옥주(진도) 태생이라고 하는 것을 이 귀로 똑바로 들었습니 다.”
김개동은 자신이 들은 바를 조정 관원들에게 소상히 고했다. 이를 통해 살동에 관한 일이 조정에 처음 알려졌다.
살동에 관한 일은 실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지난 정해년 봄에 왜구들이 죽도에 들어와서 이대원을 죽였으며 또 해변 백성 사화동(沙火同[1])이란 자가 일본 오도에 표류되었다가 섬의 왜인들을 유인하 여 와서 해마다 우리나라 해변을 괴롭혔다’
[1]실록에는 한자로 [沙火同], 또는 [沙乙背同]으로 기록되어있다. 이는 [살동]의 받침 [ㄹ]을 한자로 나타내기 위해 火의 뜻 [불]의 받침인 [ㄹ]을 이용하여 나타낸 것이다. [沙乙背同]의 [乙]도 [ㄹ]의 받침을 표시키위해 사용됐다.